"채무자가 거부하면, 빚독촉 말아야"
"채무자가 거부하면, 빚독촉 말아야"
  • 기사출고 2007.12.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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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기 변호사]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Fair Debt Collection Practices Act)은 1996년 억압적, 기만적이지 않은 추심 방법으로도 충분히 채권추심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제정되었다.

1997년 이후 급속히 미국화를 겪어 온 우리의 금융관행도 FDCPA 제정 당시의 미국의 현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래 우리의 법적 전통은 변호사 아닌 자의 채권추심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채권추심을 주된 목적으로 한 자산양도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전반적인 금융법제의 개편 과정에서 채권추심업무도 신용정보업자에게 허용되는 결과 추심산업이 확장되어 있다.

◇김관기 변호사
이런 가운데 '채권추심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 중에 있다.

핵심은 소비자의 통신거부권과 대리인 제도

법안이 요구하는 공정성은 채권추심산업은 원채권자들로부터 채무자가 발행한 채권증서를 사서 이것을 채무자 자신에게 되파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것이니 본질적으로 방문판매라고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 채권추심산업이 거대한 물적, 인적 기반을 갖추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운용될 때 개별적으로는 위협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구입권유일 뿐이라도 채무자는 열악한 소비자의 입장에 처하게 되고 공정한 거래를 위해서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방문판매를 규제하는 것이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제3자인 채권추심산업 쪽으로부터의 빚 독촉도 소비자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지 못할 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채권추심인이 지켜야 할 행위규준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기존의 신용정보업을 규율하는 법률에도 있는 만큼 변화를 준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법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통신거부권과 소비자대리인 제도다. 소비자는 자신의 생산활동 즉, 노동에 전념하고 채무를 상환하거나 거부하는 것과 같은 나머지 사무는 외주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먼저 채무자가 제3자인 추심인에게 채무를 이행할 생각이 없다는 선언을 하면 추심인은 소비자에게 빚 독촉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11조 8호가 소비자가 살 의사 없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통신을 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취지이다.

민, 형사상 법적 조치는 가능

물론 이것은 그 이외의 법적 조치를 제한하지 않는다. 채권추심인은 소송을 할 수 있고, 압류, 가압류, 형사고소 기타 민사법, 형사법에 의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의사도 없이 계속 통신만을 보내는 행위는 금지된다. 아마도 이렇게 하면 법적 조치의 사태가 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있을 것이지만, 소송 그 자체가 많은 비용을 수반하고 또 소송은 채권을 전부 취소해 버리는 파산제도의 이용을 촉발하는 경향이 있기에 쉽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채무자가 채무의 이행에 관해 변호사 등 제3자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정하면 채무자나 대리인의 통보 또는 우연한 계기로 이 사실을 아는 추심인은 채무자에게 직접 빚 독촉 기타 통신행위를 하지 못한다. 이것은 거래의 창구를 지정하여 채무자가 자신의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대리인을 지정해 본인에의 접근권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은 현대 민사법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회사의 대표이사가 창구 직원에게 수납을 시키고 직접 돈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채무자는 법인등기부등본에 나온 대표이사의 개인 주소지로 찾아가도 면담을 거절당할 수 있으며, 한편 회사 본점으로 찾아가도 대표이사 개인을 만나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지점장이나 차장, 과장을 만날 기회도 없다. 창구에서 대리인, 심부름꾼과 모든 일을 처리한다. 고객이 굳이 지점장을 만나겠다고 강짜를 하면 그것은 권리의 남용을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채무자도 대리인을 특정인으로 정하고 그쪽하고만 이야기하라고 해 놓고 생업에 전념하겠다는 것은 공평의 견지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제도이다.

이것은 채무자에게 숨 쉴 틈을 준다. 빚 독촉 전화 때문에 이혼을 하고 실직을 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것은 이혼과 실직을 방지한다. 어쩌면 자살까지도 방지할 것이다.

이혼, 실직, 자살까지 방지할 수도

이렇게 되면 소비자대리인은 채권추심인과 거래를 할 수 있다. 채권추심인의 취득원가에 적정한 이윤을 붙인 금액에 부실채권의 소매거래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채권추심산업이 축소될 개연성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 산업에서 배출된 고용은 원채권자에게로 흡수될 것이고 소비자대리인 쪽으로도 전환할 것이다.

법률시장에 대한 효과는 파산신청의 감소를 뜻한다. 시장을 보완하여 작동하게 하면 시장을 대체하는 규제를 할 필요가 줄어든다. 금융채권에 있어서는 파산의 신청을 현저히 줄일 것임을 뜻한다. 사실 2006년까지 매년 3배 이상씩 팽창해 온 파산신청 건수가 법원에 부담을 주고, 파산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한 것이라고 보면, 공정채권추심법에 의한 파산신청의 감소는 파산전문가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물론 공정채권추심법에 의한 채무자대리가 블루오션일지 레드오션일지 모르지만 하여튼 새로운 바다를 열어 줄 것임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김관기 변호사(sharkguar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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