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 민사2부(재판장 문봉길 부장판사)는 4월 4일 주변 공장에서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작업 중이던 다른 근로자들에게 대피하라고 권유했다가 정직 2개월의 처분을 받은 자동차 전자부품 제조업체 B사의 근로자이자 전국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지회장인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확인 등 소송의 환송 후 원심(2023나15675)에서 "정직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미지급 임금 77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인정한 것이다.
2016년 7월 26일 오전 7시 56분 무렵과 오전 9시 30분 무렵 두 차례에 걸쳐 세종시에 있는 산업단지 내 다른 회사의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 약 300ℓ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티오비스는 상온에 노출되는 경우 분해되면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데, 황화수소는 독성이 강한 기체로서 눈, 코 또는 목에 자극을 일으킬 수 있고, 천식환자에게는 호흡곤란을 유발할 수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세종시 소방본부는 현장지휘차량의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50m 거리까지 대피를 하라'는 취지의 대피방송을 했다. 이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500m~1km 거리에 있는 마을의 이장들을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창문을 폐쇄하고 외부 출입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대피방송이 이루어졌고, 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은 소방본부가 설치한 통제선 내에 있는 공장의 근로자들에 대해 대피를 유도했다.
A씨는 누출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10:00 무렵 B사의 노무이사,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근로감독관 등과 함께 누출사고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당시 근로감독관은 대피를 권유했다. A씨는 이어 10:21 무렵 소방본부에 전화해 누출된 화학물질이 어떤 것인지, 인체에 유해한 것인지 등에 관한 질의를 했고, 10:46 무렵 다시 소방본부에 전화해 B사에 대해 대피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질의한 결과 소방본부로부터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이에 A씨는 회사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당시 작업 중이던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인 B사 근로자 28명에게도 대피하라고 말했고, B사 노무이사에게 이러한 상황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11:30 무렵 조합원 25명이, 11:50 무렵 조합원 3명이 작업을 중단하고 작업장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B사가 나중에 'A씨가 작업장을 무단이탈한 후 주간 근무 중인 조합원 28명에게도 임의로 작업을 중지하고 집단으로 무단이탈할 것을 지시했다'는 등의 이유로 A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리자 A씨가 재심을 청구, 정직 2개월로 감경되었으나 A씨가 이마저도 무효라며 정직기간의 미지급 임금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 2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이 A씨의 행위를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파기환송, 환송 후 원심 재판부가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A씨에 대한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 무효확인과 임금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는 산업재해 즉,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 · 설비 · 원재료 · 가스 · 증기 ·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사망,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이와 같은 사유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구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항, 제26조 제2, 3항)"고 전제하고, "당시 피고 회사의 직원들에게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고, 이에 원고는 피고 회사의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 및 단체협약에 따른 작업중지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원고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피고가 원고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되므로,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10m 이상의 지점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어도 황화수소의 분산으로 인한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실제로 이 사건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오심,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였고,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피고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아가 원고는 피고 회사의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누출되었고 이미 대피명령을 하였다는 취지의 소방본부 설명과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하면서, 노동조합에 소속된 피고 회사의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원고가 화학물질이나 사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점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소방본부의 설명 및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당시 대피가 필요할 정도로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은 원고의 인식이 합리적인 근거를 결여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여는이 1심부터 A씨를 대리했다. B사는 김앤장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