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서울남부지법, 변호사-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 압수 취소 결정
[형사] 서울남부지법, 변호사-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 압수 취소 결정
  • 기사출고 2024.03.1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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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P 특권 명시적 인정 주목

우리나라에선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의 비밀유지권, 이른바 '변호사-의뢰인 특권'(ACP : Attorney-Client Privilege)이 아직 명시적으로 입법화되어 있지 않아, 수사기관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를 압수하고 이를 수사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남부지법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에 대하여는 변호인이나 의뢰인이 그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판시해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법은 의뢰인이 변호사와 주고받은 문서, 메일, 메시지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가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A자산운용사를 변호한 법무법인 광장에 따르면, 검찰은 2023. 7.경 A자산운용사 대표와 임직원의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사건의 수사를 개시하고, A자산운용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를 통하여 A자산운용사가 전자정보 등의 형태로 보관하고 있던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를 다수 압수했다. 검찰이 압수한 자료에는 변호사가 A자산운용사의 질의에 대하여 작성한 법률자문 의견서뿐만 아니라 A자산운용사가 과거 별건 수사 및 재판 과정을 거치며 피의자 및 피고인의 지위에서 변호인과 주고받은 문서, 메일, 메시지 등까지도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광장은 A자산운용사의 변호인으로서, 압수수색 및 포렌식 과정에 참여하여 검찰이 A자산운용사가 보관하고 있던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를 압수하는 즉시 현장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에 대한 압수 처분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므로 위법하다는 의견을 검찰에 지속적으로 제출했다.

압수수색 종료 이후 A자산운용사는 압수 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준항고를 제기했다. 광장은 ①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강하게 보호되고 있는 점, ②「형법」, 「형사소송법」 및 「변호사법」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점, ③미국을 비롯한 선진 법치국가들은 모두 사법 정의의 증진을 위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자유로운 의사 교환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는 점, ④소송 절차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은 단일한 주체이므로 그들 사이의 의사교환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국민의 내심을 검열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무기대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A자산운용사가 보관하고 있던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에 대한 압수 처분이 위법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서울남부지법은 2월 23일 "조언과 상담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변호인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하며, "의뢰인이 피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제12조 제4항에 의하여 인정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중 하나로서,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서 의뢰인이 법률자문을 받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루어진 의사 교환에 대하여는 변호인이나 의뢰인이 그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자료 일체에 대한 압수를 취소했다(2023보4).

서울남부지법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형법」, 「형사소송법」 및 「변호사법」에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 의뢰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형사소추의 위험에 대비하고 강제수사에 대항한다는 측면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변호인과 사이에 비밀보장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밝혔다.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광장의 정유철 변호사는 "변호사-의뢰인 특권을 법원이 정면으로 인정한 사례"라며 "향후 상급 법원의 판단을 거쳐서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다면 형사 피의자의 인권 보호 수준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결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