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를 다루는 근본은 성의"
"송사를 다루는 근본은 성의"
  • 기사출고 2024.03.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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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법관' 엄상필 대법관의 사법관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것, 공동체의 정의 기준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선언하여 사회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변치 않을 우리의 소명이자 책무이고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선언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법원의 임무임을 잊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다수의 이익을 함께 살피겠습니다."

엄상필 대법관의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치밀한 법적 논증과 사건에 대한 깊은 이해, 통찰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정통 법관인 그는 대법관 취임사에서도 이러한 법관의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절차적 정당성의 실현, 그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고, "사회적 다양성의 증가, 기술 발전 및 세계화의 흐름이 사법부에 던지는 질문을 심사숙고하여 적절히 대처하는 데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엄 대법관은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을 엎드려 살피고, 고개를 높이 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멀리 바라보겠다. 왼쪽과 오른쪽을 빠짐없이 둘러보고, 뒤돌아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세심하게 살피겠다. 눈 덮인 들판에 새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뒷사람의 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

◇엄상필 대법관이 3월 4일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엄상필 대법관이 3월 4일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엄 대법관은 법관으로서 스스로 삼가고 또 삼가는 흠흠(欽欽)의 자세를 강조하고, 송사를 듣고 다루는 근본은 성의(誠意)에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성을 다하여 분쟁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고, 법의 문언이나 논리만을 내세워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정의 관념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경험과 시야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위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대법관으로서의 소망과 다짐을 밝혔다.

그의 법관으로서의 자세, 사법관(司法觀)은 2월 28일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발언(冒頭發言)과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도 잘 나와 있다.

그는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그동안 오직 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저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어렵거나 힘들다는 이유로 피하려 한 적은 결코 없었고, 송사를 다루는 근본은 성의에 있음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작은 사건 하나라도 소홀히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자부한다"며 "사법부와 법관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는 정의로운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임을 명심하면서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또 "사법부와 법관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는 정의로운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임을 명심하면서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임을 잊지 않으면서 공동체와 다수의 정당한 이익을 함께 살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 대법관은 "다시금 돌이켜보면 저의 모든 재판은 두려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절차의 진행이 공정하고 투명하면서도 당사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잃지 않는 것이었는지, 판결의 결론은 물론이고 거기에 이르는 논리의 전개가 치밀하고 타당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가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했는지가 늘 두려웠다. 어쩌면 그러한 두려움, 여전히 부족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야말로 오늘 이 자리까지 나를 이끌어 온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회고했다.

청문회 기록을 토대로 엄 대법관의 법관으로서의 철학, 주요 사법관을 요약, 소개한다.

◇모두발언 요지=재판기록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상세히 파악하고 거기에 적용될 법리를 연구하는 것에 더하여 분쟁의 배경까지 이해한 바탕 위에서 그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고자 하였다. 형사재판에서는 형벌을 다스리는 법관의 도리인 '삼가고 또 삼가는 것', 즉 흠흠하기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늘 돌아보고 걱정하였다. 피고인이 자백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고 과연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혹시라도 가혹행위나 부당한 약속 · 회유로 인한 것은 아닌지 경계하였다. 객관적 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에서도 그 증거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집된 것인지를 면밀하게 따져 보고 절차의 위법성이 중대한 경우에는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았다. 구속과 압수수색영장 업무를 처리할 때에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수사의 필요성과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저울 양쪽에 올려놓고 밤낮없이 고민하였다.

◇재심=아무래도 법원에서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을 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증거가 밝혀지거나 한 경우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재심에 응할 필요도 있고 만약에 필요하다면 그런 입법적인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을 한다.

◇법원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보면 우선 내 얘기가 과연 판사에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얘기를 제대로 꼼꼼하게 살펴봤는지, 내가 써낸 자료들 잘 살펴봤는지에 대한 걱정이 항상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재판에는 그 재판으로 인해서 유리한 결론을 받는 사람도 있고 또 불리한 결론을 받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신뢰 관계는 좀 떨어지고 법원을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걱정들을 하시는 부분이 많은 것 같고, 그 점을 항상 주의하고 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민원 증가=흔히 법조인이 생각하기에는 또 판사가 생각하기에는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라면 일단은 결론에 대한, 판결에 대한 항소로 먼저 이의를 제기할 것 같은데 그와 별도로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민원으로 제기했다면 그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것을 먼저 좀 살펴봐야 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구체적인 민원이나 또 진정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좀 파악을 해야 될 것 같고. 우선 첫 번째로는 판사 또는 법원 구성원이 당사자에 대해서 뭔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적절히 배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재판할 때 보면 흔히 어려운 당사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재판 진행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정말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그 얘기를 들어 주지 않았을 때 재판을 하는 판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하게 민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면절차법=사면 절차가 좀 더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그 이유도 왜 그런 사면을 하게 되었는지가 조금 더 상세하게 밝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면절차법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

◇판검사 탄핵절차법=절차를 투명하게 또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한 절차법은 필요할 수 있겠다라는 데 공감한다.

◇재판 지연 해소 방안=우선은 어떤 제도개선을 바라기보다는 현재의 제도 안에서, 소송 절차 법령 내에서 판사가 취할 수 있는 각종 조치들을 취해서 집중해서 심리를 하고 결론을 조금 더 빨리 낼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게 저희로서 해야 될 도리라고 생각을 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좀 부족하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현재까지 분석 결과라고 전달받고 있고, 그래서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게 뭐냐라는 측면에서 아무래도 법관 수가 늘어나서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사건의 수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그때부터 조금 더 신속하게 그리고 좀 더 충실한 재판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법관 증원이 현재로서는 당장은 좀 급한 부분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저출생 대책=사실은 어떤 제도의 마련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기는 한다. 물론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사생활의 영역에 있는 출산의 문제를 제도를 어떻게 구성해서 그것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 생각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릴 만큼은 못 미치는 것 같다.

◇여성 배려 노력=(여성들이 배려받고 보호받을 수 있으려면 사법절차에서 성평등과 성인지감수성 반영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질의에) 그동안 제가 한 일이 사실은 재판 말고 다른 것이 없어서 재판 이외에 제가 뭘 했다고 말씀드릴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재판을 함에 있어서 성인지적 관점이라든지 제가 계속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의한 어떤 편견이 있지는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쓰고 유의했다.

◇여성 대법관 비율=(신숙희 대법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여성 대법관 비율이 인구 대비 대표성 비율인 50%까지는 필요하다고 말한 데 대해)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적어도 인구의 구성 비율에 맞는 정도의 남녀 비율 확보 정도는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지금 언론에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하향하는 것에 관해서 하향이든 또는 상향이든 어떤 방향이어도 좋지만 정확한 기준을 정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 걱정을 좀 갖고 있다. 지금 아동들, 어린 친구들에 의한, 어린 사람들에 의한 범죄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러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어서 형사처벌을 가하는 정도가 조금은 더 높아져야 되는 것 아닌가, 그 범위가 넓어져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면서도 그러면 낮추면 어디까지 낮출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연구,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민적 우려, 또 피해자의 입장과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 그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서 반드시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도 사회적 합의가 되는 경우에는 하향도 검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법입원제=(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여부 판단을 담당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에 관한 신현영 의원 질의에) 기본적인 취지에는 동의하고 있다. (법원이 빠른 속도로 전문성을 갖고 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술을 들으면서 절차, 조력, 지원까지 보장할 수가 있어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좀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