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로펌을 좋아한다
판사는 로펌을 좋아한다
  • 기사출고 2008.04.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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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판사 절반 이상 로펌행…검찰 간부도 적지않아 '다양한 사건 경험 매력'…로펌선 전문성 가려 뽑아
법원의 정기인사가 있은 지난 2월을 전후해 100명에 가까운 판사들이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났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송하, 김수형, 권남혁, 이명규, 한위수, 이영구 변호사
이 중 절반이 넘는 상당한 인원이 로펌에 둥지를 틀었을 만큼 판사들의 로펌행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1년에 한 번씩 매년 2월 정기인사를 단행하며, 사직을 원하는 판사들은 이 때 법원에 사표를 내야 한다. 법원을 떠나고 싶어도 아무 때나 법관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판사들의 로펌행은 변호사 시장이 로펌 위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해 여름 2006년 국내 변호사업계의 매출액을 1조 5000억~1조 7000억원으로 추정하며, 이 중 70% 이상을 로펌들이 올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변호사업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상위 6대 로펌이 차지할 만큼 대형 로펌의 시장점유율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로펌에 자리를 잡은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송무도 큰 사건은 로펌으로 몰리고 있다"며, "사건 유치에 신경쓸 필요없이 다양한 사건을 경험할 수 있는 매력에 이끌려 단독개업이 아닌 로펌을 택했다"고 로펌변호사가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로펌에 따라서는 법복을 벗고 새로 합류하는 재조 출신 변호사에게 수익 분배 등과 관련, 단독개업 못지않은 메릿을 부여하고 있어 이런 점도 판사들의 로펌행에 유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로펌 입장에선 송무팀 강화를 위해 전직 법관 등 재조 출신을 지속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로펌업계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로펌마다 송무팀을 강화하고 있는 게 최근의 추세"라며, "수익성이 높은데다가 시장이 개방돼 외국변호사들이 들어와도 송무 만큼은 국내 변호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로펌마다 송무분야를 강화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일류 로펌 입사를 희망한다고 해서 로펌마다 '어서 오시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로펌도 재조 출신이 늘어나며, 문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 법원 주변에선 실제로 부장판사급의 중견 법관이 모 로펌에 입사를 타진했다가 점잖게 거절당했다는 식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로펌에서도 업무 수요에 맞춰 전문성과 그에 걸맞는 경력을 갖춘 변호사를 골라 뽑고 있다. 로펌에 따라서는 일선 재판업무에서 비켜 나 있는 법원장 출신은 사양한다든가, 고법부장 대신 지법부장을 선호한다든가 하는 독특한 리쿠르트 방침을 채택하고 있다. 재조 출신이라고 무조건 모셔가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사 출신 만큼 많지는 않지만, 검사 출신들도 로펌에 합류하고 있다. 로펌에 따라 송무 중에서도 검찰 형사분야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사장 이상의 검찰 고위 간부 출신들이 로펌의 지휘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동기 전 대검차장은 법무법인 바른의 공동대표, 정진호 전 법무차관은 법무법인 동인의 대표변호사가 됐으며,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 안영욱 전 법무연수원장은 각각 법무법인 광장과 태평양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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