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월 9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두 차례의 국제중재를 제기한 재무적투자자(FI)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2조원대의 교보생명 풋옵션 행사와 관련, 풋옵션 주식에 대한 가치평가 과정에서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3명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관계자 2명에 대한 상고심(2023도2742)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피고인들을 변호했다.
대법, "주식 가치평가에 공인회계사법 위반 인정 안 돼"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무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며 "원심의 판단에 구 공인회계사법 제53조 제2항 제1호, 제15조 제3항에서의 '허위보고', 같은 법 제53조 제1항 제1호, 제22조 제3항에서의 '부정한 청탁'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원심(1심)은, 안진회계법인과 어피니티는 이 사건 가치평가 업무에 있어 평가방법이나 평가인자에 대하여 의견교환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들 사이의 의견교환 횟수가 다소 많다는 사정만으로는 어피니티가 평가방법을 결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며 "가치평가는 이용 가능한 정보를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값을 정하는 과정으로서 그 과정에서 의뢰인으로부터 의견과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필요하고, 특히 이 사건 가치평가와 같이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닌 의뢰인과의 사적 계약에 따라 행해지는 가치평가의 경우 의견교환의 대상이 평가작업 전이나 착수 초기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사항에 국한된다거나 평가과정에서 구체화되는 평가내용이나 결과는 평가자와 의뢰인 간의 이해나 의견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와 함께 공인회계사법상 허위보고 혐의와 관련,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피고인 회계사 3명을 비롯한 안진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들이 가치평가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적인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의뢰인인 어피니티 컨소시엄 관계자들이 가치평가에 적용할 평가방법, 비교대상 기업과 거래의 범위 등 평가인자 및 최종 단가를 결정하여 가치평가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부정청탁에 따른 금품수수 등으로 인한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어피니티 측이 피고인 회계사 3명에게 평가방법 및 평가인자를 정해주고 그대로 가치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달라고 하는 등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청탁을 하고, 이에 따라 피고인 회계사 3명이 허위의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어피니티로 하여금 부당한 금전상의 이득을 얻도록 가담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ICC 2차 중재=풋옵션 주식 가치평가에 대한 형사재판이 무죄 확정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신창재 회장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의 향배에 한층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교보생명 지분 24%의 풋옵션 주식을 주당 40만 9,912원에 매수하라는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이행청구에서 풋옵션 주식에 대한 평가 자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남은 이슈는 어피니트는 풋옵션 주식의 적정시장가격(FMV)을 산정해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신 회장이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에 응하지 않고 FMV 산정을 위한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 회장에게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 또는 또 다른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할 의무가 있느냐 여부.
ICC 중재판정부는 1차 중재에서 풋옵션은 유효하고 신 회장이 풋옵션이 들어 있는 주주간 계약을 위반했다고 하면서도 신 회장이 어피니티가 제시한 주당 40만 9,912원에 어피니티 등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주당 40만 9,912원으로 환산할 경우 약 2조원)를 살 의무는 없다고 어피니티 측의 청구를 기각, 어피니티 측이 다시 중재를 제기해 2차 중재가 진행 중에 있다.
어피니티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취득할 때의 매입가격은 409,912원의 약 60%인 주당 24만 5,000원으로, 어피니티가 지분 24%를 이 가격에 취득한 총 매입대금은 1조 2,000억원이었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가 두 배 가까운 41만원에 풋옵션을 되사가라며 약 1조원의 부당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풋옵션을 약정한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양측이 제시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이 FMV가 되고, 만약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가 제시한 3곳의 평가기관 중에서 한 곳을 신 회장이 선택해 그 기관이 평가한 가격이 최종 FMV가 되나, 신 회장은 FMV를 제시하지 않았고, 주주간 계약엔 당사자 일방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적정시장가치를 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ICC 중재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보생명 풋옵션을 둘러싼 2차 ICC 중재는 어피니티 측은 김갑유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피터앤김과 법무법인 태평양, Three Crowns가 대리하고 있고, 신 회장 측 대리인은 1차 중재와 마찬가지로 임성우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광장과 홍콩사무소의 존 리(John Rhie) 등이 포진한 퀸 엠마누엘(Quinn Emanuel)이다.
양측이 서로 주장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본격 심리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내년에 변론이 진행된 후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