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가 지연 출발해 장시간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면 항공사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0월 26일 A씨 등 269명이 "지연 출발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다254765)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상고를 기각, "아시아항공은 원고들에게 1인당 4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 등 269명은 추석 연휴인 2019년 9월13일 01:10(현지시간) 아시아나항공 소속 항공편을 이용해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A씨 등이 수완나폼 국제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던 중 이 항공편에 투입된 항공기에 여압장치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 아시아나항공이 이 항공기의 부품을 교체하는 수리를 실시한 후 해당 항공기를 인천국제공항으로 복귀시켰으며, 04:20쯤 A씨 등에게 항공기의 기체 결함으로 인해 항공편의 운항이 취소되었다고 알렸다.
이후 승객 중 일부는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같은 날 09:40 또는 12:45에 출발하는 대체 항공편을 제공받거나 다른 항공권을 구매해 귀국했으나 나머지 승객은 당초 탑승예정시간을 22시간 초과한 23:40쯤 아사아나항공 소속 항공편에 탑승해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출발, 9월 14일 07:45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에 A씨 등이 아사아나항공을 상대로 1인당 70만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의 쟁점은 몬트리올 협약상 '손해'의 범위에 정신적 손해도 포함되는지, 항공사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는지 여부였다.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몬트리올 협약) 19조는 "운송인은 승객 · 수화물 또는 화물의 항공 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은 본인 · 그의 고용인 또는 대리인이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먼저 "몬트리올 협약 제19조는 '운송인은 승객 · 수하물 또는 화물의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면서도, 손해의 내용과 종류 등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같은 협약 제17조에서 승객의 사망 외에는 신체의 부상으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만 배상책임을 규정하는 등 나머지 규정들과의 체계적 해석, 위 제17조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정신적 손해 부분을 배제하기로 한 협상의 경과 등을 고려하면, 제19조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상 손해만을 의미하고 정신적 손해는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몬트리올 협약이 규율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는 법정지인 우리나라의 국제사법에 따른 준거법이 보충적으로 적용되고, 그 준거법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으므로, 법원으로서는 승객 등이 항공운송의 지연으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운송인을 상대로 보충적 준거법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 국제사법에 따라 당사자들의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준거법을 검토하고 그에 따라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및 그 범위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국제항공운송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의 법률관계에 적용되어야 하는 준거법은 대한민국 법이므로, 몬트리올 협약 제19조가 정하는 손해에 포함되지 않은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도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법리를 적용하여 항공운송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원심이 이 사건 소가 제기된 법정지법인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법리에 따라 몬트리올 협약 제19조를 해석함으로써 위 협약 제19조에 직접 근거하여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이유 설시는 적절하지 않으나, 항공운송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결론은 정당하여 거기에 몬트리올 협약 제19조와 제29조에 관한 법리오해나 이유불비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도 이날 B씨 등 승객 77명이 장시간 출발 지연에 따른 책임을 물어 제주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21다259510)에서 같은 취지로 판시하고, "제주항공은 성인에게는 1인당 70만원, 미성년자에게는 1인당 4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 등 77명은 2019년 1월 21일 오전 3시 5분 제주항공 소속 항공편을 이용해 필리핀 클락국제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오전 8시 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항공기 이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번 엔진에 연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륙하지 못했다. 제주항공은 곧바로 항공기에 대한 정비를 실시하였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승객들은 예정보다 19시간 25분 가량 늦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 제주항공이 제공한 대체 항공기를 이용하여 클락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다음날인 1월 22일 오전 3시 30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주항공은 이 사고 후 항공기 엔진의 연료조절장치와 연료펌프를 교체했다.
아시아나항공 사건의 원고들은 김지혜 변호사가, 제주항공 사건의 원고들은 법무법인 두우가 각각 대리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법무법인 지평, 제주항공은 법무법인 클라스가 각각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