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위탁진료계약 맺고 월급 받은 의료생협 의사도 근로자"
[노동] "위탁진료계약 맺고 월급 받은 의료생협 의사도 근로자"
  • 기사출고 2023.10.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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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월 735만원 고정 지급, 진료업무 수행 현황 · 실적 보고"

위탁진료계약을 맺고 의료생협 의원에서 월급을 받고 일한 의사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9월 21일, 2017년 8월 1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2년간 근무한 소속 의사 B씨에게 퇴직금 1,4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위반)로 기소된, 서울 중랑구의 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 의원 대표 A씨에 대한 상고심(2021도11675)에서 이같이 판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는 의료생협의 대표자로 2012년 4월 이 의원을 개설해 운영하다가 당시 재직 중이던 의사 C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3년 4월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A는 C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벌금 200만원의 판결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해 항소,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A는 그후 공인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위탁진료계약 형식의 계약서를 제공받아 노무관계를 해결해 오다가 2017년 8월 B와 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매월 600만원과 현금 135만원을 받는 내용의 위탁진료계약을 체결했고, B는 A로부터 위 금액을 고정적으로 지급받았다. B는 이 의원의 유일한 의사로 근무시간이 주중 09:00~18:00, 토요일 09:00~15:00로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고, 근무 장소도 진료실(원장실)로 특정되어 있었다. 또 위탁진료계약에 따라 B는 월 1회 상호 조정 하에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 및 실적을 A에게 통지하여야 했고, A는 보고의무를 해태하거나 불성실하게 행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B가 근무 중 사용하는 각종 의료장비나 사무기기 등은 A가 제공한 것이었고, B는 이 의원을 사업장으로 한 건강보험 가입신고가 되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A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A와 B가 맺은 위탁진료계약서에는 'B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노동관계법과 관련한 부당한 청구를 하지 않는다'라는 기재가 명백히 되어 있고, B에 대한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B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심과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먼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04다29736 등)을 인용,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비추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 ⋅ 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 ⋅ 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 ⋅ 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계약의 형식이 위탁진료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B가 정해진 시간 동안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고 피고인은 B에게 그 대가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며, 이 사건 의원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였던 유일한 의사인 B는 주중 및 토요일 대부분을 이 의원에서 근무하면서 매월 진료업무 수행의 현황이나 실적을 피고인에게 보고하여야 했으므로, 피고인은 B의 근무시간 및 근무장소를 관리하고 B의 업무에 대하여 상당한 지휘 ⋅ 감독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B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B는 피고인이 제공하는 의료장비나 사무기기를 활용하여 진료업무를 수행하였고 피고인으로부터는 환자 치료실적에 따른 급여의 변동 없이 매월 고정적으로 돈을 받았으므로, B가 지급받은 돈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B가 비록 진료업무수행 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 ⋅ 감독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의사의 진료업무특성에 따른 것이어서 B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