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U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기업의 공급망 내 존재하는 인권환경 위험을 파악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ESG 경영 트렌드에 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공급망 실사 준비를 시작하였고, 2023. 9. 1. 정태호 의원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23. 9. 18. 법무법인 광장이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와 공동으로 개최한 '공급망 실사 대응 토론회'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태호 의원의 법안 발의 직후 가장 발빠르게 개최된 공식 행사라는 점에서 특히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토론회는 세 기관을 대표한 광장의 시민식 ESG센터장의 개회사로 막을 열었다. 인권위 윤석민 전문관의 사회 하에 3가지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송세련 인권위 인권경영포럼 위원장이 '국내 공급망 실사 법제화 소개 및 시사점'을,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경협 유정주 기업제도팀 팀장이 '공급망 실사 법제화의 문제점'을, 마지막 세션에서는 광장 설동근 변호사가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 및 기업 대응 방안'을 주제로 발제를 각 진행한 다음, 참석자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하에서는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룬 설동근 변호사의 발제 내용을 소개한다.
1. 공급망 실사의 의의
공급망 실사란 실사 주체 기업이 각 적용대상 법률의 시행일부터 지리적으로는 해당 법률에 따른 관할부터 시작하여 잠재적으로는 전 세계의 공급망까지도 포함하여 실사 객체 기업들을 상대로 인권 및 환경 등 위험(자신의 기업활동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관한 실사를 실시하고, 관련 위험을 식별, 예방, 완화, 제거하는 조치를 취한 다음, 그와 같은 실사 내용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을 하는 한편,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들에 대한 보고(공시)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EU에서는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EU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이하 "EU CSDDD")의 입법 과정이 진행 중이며, 국내에서도 최근 정태호 의원의 법안이 발의되었고, 그 외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노르웨이에서도 각각 별도의 국내법을 통해 서로 다른 내용의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공급망 실사를 준비하고자 하는 기업으로서는 자신이 진출하여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국가를 특정하고, 각 지역/국가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어 인권환경 실사를 시행할 수 있는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특히 과거에는 자율적으로 산업계 이니셔티브에 의하여 실시하던 공급망 실사가 최근에는 법제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과징금 등 금전적 제재 가능성
이들 법률에 따른 제재는 지역/국가마다 다소 상이하긴 하지만, 실사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각국 감독당국에 의한 조사 내지 감사가 개시될 수도 있으며, 위반행위가 확인되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과 같은 금전적 제재가 부과될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국내 정태호 의원 발의안은 법률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어 향후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급망 실사는 더 이상 기업의 ESG 경영 측면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준법 경영 측면에서도 시급한 당면 과제가 되었다.
2.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 필요성
공급망 실사 체계란 앞서 살펴본 공급망 실사를 이행하고, 그 이행 내용 및 결과를 공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기업 내부의 정책 및 업무 절차(프로세스)를 의미한다. 관련하여 각국의 공급망 실사법에서는 실사를 실시하여야 하는 실사 주체 기업을 정의하고 있다. 예컨대, EU CSDDD는 EU 기업과 EU 역외 기업을 구분하는 한편, 고위험산업군 해당 여부에 따라 근로자 수와 매출액 기준을 두어, 기본적으로 대기업만을 실사 주체 기업으로 정의하고, 대기업에게만 실사 의무를 부과한다. 국내 정태호 의원 발의안 또한 중소기업에 해당하거나, 상시 사용 근로자 500명 미만으로서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 2,000억원 미만 기업에 대하여는 실사 의무의 대부분을 면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급망 실사법을 토대로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은 대기업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실사를 받게 되는 실사 객체 기업에 해당하는 바, 대기업의 실사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또한 자체적인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고위험산업군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편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공급망의 각 단계별로 여러 협력업체들이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바, 같은 기업도 어느 협력사와의 관계에서 때로는 실사 주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실사 객체가 되기도 하므로 두 경우 모두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급망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3. 공급망 실사 체계 구축 방안
공급망 실사 체계의 주요 구성 요소는 (1)경영책임자 등 담당 임원의 선임, (2)실사 이행 조직의 구성, (3)실사 예산의 편성 및 집행, (4)실사 업무 매뉴얼과 프로세스 마련, (5)실사 의무 이행을 위한 tool kit의 구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1)경영책임자 등 담당 임원의 선임 및 (2)실사 이행 조직의 구성과 관련하여서는 해당 기업에 적용될 각국 공급망 실사법을 확인하여야 한다. 예컨대 국내 정태호 의원 발의안의 경우, 인권환경실사 이행책임자를 지정하도록 하고, 이사회 내 위원회를 설치해 인권환경실사 실시 계획 및 결과, 인권환경위험 대책 등을 심의, 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또 위 발의안은 경영책임자 등으로 하여금 매년 인권환경실사 이행계획을 수립하여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고, 인권환경실사 실사에 관한 감독책임을 부과하는 한편 고의 · 과실로 감독책임을 게을리한 경우 기업과 연대하여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향후 입법될 법률의 내용에 따라 기업들은 법적 의무에 부합하는 역할과 책임을 경영책임자와 이행책임자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조직 개편을 하여야 할 수도 있다. 아울러 (3)실사 예산의 편성 및 집행과 관련하여서는 공급망 실사 (이행) 체계 구축을 위하여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것이 요구된다. 관련 비용에는 실사 수행, 결과 분석, 대책 수립, 이행 평가 및 검증을 위한 인력의 확보, 실사 관련 자료의 구비를 위하여 필요한 비용, 협력업체에 대한 실사 지원 비용, 관련 전산/정보시스템 구축 비용, 공급망 관련 위험을 발견하기 위한 고충처리절차의 운영 비용, 공급망 실사 관련 컨설팅 비용, 산업별 이니셔티브 참여 비용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4)실사 업무 매뉴얼과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각 기업은 자신의 공급망 전반의 위험을 식별하고, 예방, 완화, 해소, 최소화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마련하여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입법 중인 법률안들의 경우, 공급망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의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정태호 의원 발의안의 경우, 실사 대상 기업활동을 (a)자신의 기업활동과 (b)공급망에 속하는 기업의 기업활동으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a)자신의 기업활동은 자사 및 연결재무제표상 종속회사,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지위에서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로 정의하고 있으며, (b)공급망에 속하는 기업의 기업활동은 재화(금융투자상품을 포함) 또는 용역을 생산하거나 거래를 할 때 당해 기업에 필요한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국내 · 외 경제 주체들과 그 기업이 원자재 획득에서부터 최종 소비에 이르는 모든 관계에서 직 · 간접적으로 형성하는 관계(금융회사의 금융상품을 통한 관계 포함)로 직접 공급자와 간접 공급자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소요된 모든 원자재의 공급처(예컨대, 국내 전자제품 제조업체라고 한다면, 그에 필요한 광물을 공급한 남미의 광산)를 해당 기업 스스로 실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당 기업과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간접 공급자의 범위를 특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유의미한 공급망 실사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기업들은 자신이 속한 산업군 특성에 맞는 인권환경위험을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주요 협력사를 식별한 다음, 협력사별 중요도에 따라 계층(tier)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실사 대상 및 범위를 특정하고 나면, 주요 협력사에 대한 인권환경 위험 실사를 시행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하여 각 협력사로 하여금 자신의 인권환경 위험을 스스로 자가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자가점검 결과 특별한 위험이 식별된 경우나, 특히 중요도가 높은 협력사의 경우에는 실사 주체 기업이 직접 방문하여 현장 실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실사 주체 기업은 자가점검 체크리스트나 현장 실사시 사용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위험이 발견된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또 주기적으로 실사를 시행하고 위험 해소 관련 경과를 모니터링(Monitoring)하는 한편, 실사 결과를 보고(Reporting)하고, 검증(Verification)하는 MRV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실사 결과 공시 의무화
특히 각국의 공급망 실사법은 실사 결과에 대한 보고(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는바, 각국 법률에 따른 보고 주기를 고려하여, 주기별(연간) 공시 준비를 위한 업무 타임라인을 설정하고, 실사 정보의 효율적 수집 및 관리를 위하여 담당 부서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급망 실사 과정에서는 협력사의 자가점검을 위한 체크리스트, 현장 실사용 설문조사가 필요하며, 실사 결과를 분석하기 위한 정량 지표로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의 개발도 요구된다. 또 각국 공급망 실사법은 인권환경 위험 관리에 관한 보증을 협력업체와의 계약서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바, 이를 위한 표준계약문구 및 기업 행동강령 등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자료들은 모두 (5)실사 의무 이행의 위한 tool kit에 해당하는데, 기업 스스로 준비하여 구비하기가 어렵다면, 변호사 등의 자문을 받는 것을 권장한다.
4. 공급망 실사시 유의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 실사를 이행함에 있어서 가장 관건은 공급망 범위의 특정이 될 것이다. 관련하여 어디까지가 해당 기업의 주된 기업활동과 관련 있는 공급망인지에 관한 가치 판단이 필요한 바, 관련 산업계 이니셔티브나 업계 관행 등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공급망 실사 과정에서 협력업체로부터 각종 실사 관련 정보를 요구하더라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 · 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 타 법에 위배될 소지는 없는지를 사전에 점검하여야 한다. 특히 실사 대상 정보 중에는 협력업체의 영업비밀이 포함될 수도 있는바, 요청하거나 제공받는 정보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반대로 실사 객체 기업의 입장에서도 공급망 실사를 실시하는 실사 주체 기업의 요구가 정당한지, 각국 공급망 실사법 및 기타 관련 법률에 따른 항변사유는 없는지를 사전에 검토하여야 한다.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의 제공 요청은 거부하여야 하며, 그 외 실사 주체 기업으로 하여금 실사 객체 기업의 실사 및 검증 비용을 지원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률도 있는바, 그와 같은 실사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는지도 사전 확인할 필요가 있다.
ESG 경영이 강조되고, 공급망 실사의 법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내 기업들로서는 EU CSDDD를 포함한 해외 주요국의 공급망 실사법뿐만 아니라, 국내 입법 상황도 면밀히 주시하고, 미리 자신의 기업활동에 걸맞은 공급망 실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리=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