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큰 병원 가라'는 권고에 병원 걸어 나오다 쓰러져 심정지로 사망…병원 책임 없어"
[의료] '큰 병원 가라'는 권고에 병원 걸어 나오다 쓰러져 심정지로 사망…병원 책임 없어"
  • 기사출고 2023.08.29 23: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법] "이송에 관여 안 했다고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 아니야"

A(여 · 65)씨는 B씨가 운영하는 내과의원에서 2003년경부터 수시로 내과 진료를 받았는데, 2018년 2월 21일 감기몸살 증상이 있어 남편과 함께 B의 병원을 찾았다. 이날 오전 11시 10분쯤 비타민C를 섞은 아미노산 영양제 총 270㎖를 주사로 투여받고, 그동안 항생제와 기관지염 · 천식 치료제도 주사로 투여받았다. A는 그러나 위 수액을 투여받던 오전 11시 40분쯤 호흡곤란을 일으켜 수액 투여가 중단되었다. B는 청진기 등을 이용해 A에게 일어난 호흡곤란의 원인을 천식으로 파악하고, 기관지염 · 천식 치료제를 추가 투여했다.

A는 기관지염 · 천식 치료제를 투여받고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B는 A와 A의 남편에게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전원을 권고했다. A는 B로부터 전원권고를 받은 후 환자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옆으로 쓰러지듯 눕고 10초 후 다시 일어나 앉았다가 옆에 있던 남편의 부축을 받고 B의 병원을 걸어 나왔다. A는 그러나 B의 병원을 나온 후 5분이 지나지 않아 B의 병원 건물 앞에서 주저앉아 쓰러졌고, 이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 119에 신고해 출동한 119 구급차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던 중 심정지가 발생,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약 22개월 후인 2019년 12월 20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에 A의 남편과 두 자녀가 의료과실과 함께 A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소투여 및 119 구급대 호출을 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전원하게 하여 숨졌다며 B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A가 투여 받은 비타민C 등이나 그 투여 속도로 인하여 A에게 쇼크 및 심정지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원고들 주장과 같이 피고가 A의 경과를 관찰하고 119에 신고하는 등 구급차로 A를 상급병원에 이송하였다고 하더라도, A가 상급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심정지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등 여전히 A에게 같은 결과가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가 A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하였을 때 A의 혈압, 맥박, 호흡수 등을 측정하지 않았고, A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았으며, 택시를 불러 A가 즉시 탑승할 수 있게 하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송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행위는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된다"며 B는 원고들에게 위자료 2,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그러나 8월 18일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2다306185).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A가 피고 의원에 내원하였다가 주사를 투여 받은 후 전원 권고를 받고 피고 의원을 부축 받아 걸어 나왔다면, 원심이 들고 있는 것처럼 A의 혈압 등을 측정하지 않았다거나 이송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행위만으로 피고가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이와 달리 판단하여 피고에게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18다10562  등)을 인용,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으나, 이때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진이 임상의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부합하는 진료를 한 경우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는 의료진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수인한도를 넘는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는, 환자에게 발생한 신체상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와 관련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실한 진료 그 자체로 인하여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불성실한 진료로 인하여 이미 발생한 정신적 고통이 중대하여 진료 후 신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별도의 위자료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마땅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