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⑫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⑫
  • 기사출고 2023.07.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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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회계, 경영에 관한 과목 들어두면 유용"

한국 로스쿨이나 미국 로스쿨이나 JD 과정 3년 내내 변호사시험 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로스쿨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을 수강신청해 들을 여유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변호사로 활동하는 필자의 경험에 비춰 보면, 로스쿨 시절 변호사시험 과목(bar exam)이나 실체법(substantive law), 소송법(procedural law) 과목 외에 비법학 과목이나 실무 과목 같은 '소프트'한 과목에도 관심을 갖고 들어두면 특히 실무변호사로 활동할 때 매우 유용한 측면이 많아 소개하려고 한다. 기업법무를 많이 다루는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로 근무할 때도 기본법 외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공부한 과목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소프트한 과목을 너무 많이 듣다 보면 변호사시험 준비나 미국변호사로서 필요한 기본법 숙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적정한 선에서 수강해야 한다. 본인에게 소프트한 과목이 몇 개가 적정한지는 각자 개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변호사시험 과목이나 미국변호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기본법에 관한 조언은 학교에서 정보를 얻기 어렵지 않다. 다음은 필자가 로스쿨 시절 흥미를 갖고 들었던 세 과목이다.

◇Accounting for Lawyers=미국 로스쿨에 재학 중이거나 앞으로 진학할 계획이 있는 학생이라면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꼭 알아야 하는 회계실무를 다루는 'Accounting for Lawyers'(법과 회계)라는 과목을 꼭 수강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숫자에 약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자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 변호사업계는 오래 전부터 변호사 실무에서 기본적인 회계학 원리가 중요함을 강조해왔다. 그래서 웬만한 미국 로스쿨들은 대부분 이 과목을 도입해서 가르친다. 단순히 일반 회계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가 꼭 갖춰야 하는 회계실무 지식 및 회계사와 같이 일하는 법을 가르친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내가 미국 LA의 USC 로스쿨(USC Gould School of Law) JD 과정을 다닐 때도 Accounting for Lawyers에 제법 많은 학생들이 몰릴 정도로 변호사시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치고는 비교적 인기가 많았다.

로펌에서 기업법무를 처리하다 보면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 재무제표를 종종 접하게 된다. 회계의 기본을 모르면 제대로 이를 검토하거나 관련 업무를 하기 어렵다. 또 일상적인 기업법무나 딜 업무를 하다 보면 회계사들과 업무가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회계사나 고객과 대화할 때 회계 · 세무 용어를 잘 모르면 해당 사안을 잘 이해하기도 어렵고 변호사로서 적절한 의견을 내기도 어려우니 회계의 기본은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소득세법(income tax law), 국제조세(international tax law) 등의 기본적인 세법 과목도 들어 두면 좋다.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는 법률 용어 외에 회계, 세무 등 다른 전문분야의 정보가 많이 들어 있는 문서를 법률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오역이나 우스꽝스러운 번역이 나오기 쉽다.

일반 기업변호사(general corporate lawyer)가 회계 · 세무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까지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회계 · 세무 쟁점이 있는 사안이 있으면 기본적인 분석과 업무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한국 로펌 소속 외국변호사가 한국법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한국법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Business for Lawyers=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로 일하면서 기업법무를 처리하다 보면 기업경영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법적 쟁점을 다루게 된다. 그런 만큼 회계, 경영전략, 경영관리, 마케팅, 재무, 위험관리 등 기업경영 각 분야에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업의 법무팀이나 사내변호사와 업무를 협의하다 보면 해당 현업 부서와 직접 관련 사실관계 및 쟁점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현업 부서 직원들과 그들의 업무에서 발생하는 법적 쟁점을 제대로 협의하려면 해당 업무의 전문용어도 잘 이해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USC 로스쿨 JD 과정을 다닐 때 이런 필요를 충족해주는 과목이 'Business for Lawyers'(법과 경영)였다. 핵심 경영학 개념들을 변호사의 시각에서 조금씩 맛보기를 하는 일종의 개관 과목(survey course)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직장인들 사이에서 경영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압축된 '미니 MBA'류 과정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성격의 과목이라고 보면 된다. Accounting for Lawyers보다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비법학 선택 과목으로, 수강 신청할 때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부 때 회계학, 경영학 과목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JD 학생이라면 로스쿨에서 이런 과목들을 두 개 정도 들어 둘 것을 권한다. 나머지 코스워크 구성에 별 부담도 없다. 학부 때 영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로스쿨 다닐 때부터 숫자 다루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빽빽한 판례로 가득 찬 두꺼운 판례집만 보다가 여백이 많고 얇은 Accounting for Lawyers나 Business for Lawyers 교재를 보면 기분전환이 되곤 했다. 개인적으로 로스쿨에서 A학점 받은 몇 안 되는 과목들이기도 해서 더 애착이 가는 면도 있다. 나중에 기업변호사(corporate lawyer)로 일할 때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Contract Drafting and Negotiation=미국 로스쿨에서 1학년 동안 두 학기에 걸쳐 필수과목으로 배우는 계약법(Contracts)은 판례를 위주로 계약법 이론을 가르친다. 계약법 이론이 실제 영문계약서 작성 및 협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구현되는지를 가르치는 실무과목이 Contract Drafting and Negotiation류의 과목이다. 미국 실무계에서는 로스쿨의 계약법 교육과정이 너무 이론에만 치우쳐 있어 로스쿨을 갓 졸업한 변호사가 계약서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대두된지 오래다.

이런 계약서 작성 및 협상에 관한 실무과목은 필수과목은 아니지만 거래변호사(transactional lawyer)가 하는 계약실무를 배울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내가 한국 로펌에 입사해서 주니어 외국변호사로 영문 계약실무를 처리하기 시작할 때 주로 참고한 로스쿨 교재는 계약법 이론 수업 자료가 아닌 계약실무 수업 자료였다. 특히 미국 로펌에서 계약실무를 체계적으로 수련하지 못하고 한국 로펌에 취직하게 되는 외국변호사들은 영문계약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는 차원에서 적어도 로스쿨에서 Contract Drafting and Negotiation류의 실무과목을 꼭 수강하여 영문 계약실무의 기초를 닦을 것을 권한다.

내가 거의 30년 전에 미국 로스쿨에서 수강했던 이 세 개 과목들을 보면, 법학을 단순히 법학으로만 공부하는 경직된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여러 전문분야 및 실무와 함께 융합적으로 접근하는 미국 법학교육의 실용주의적인 오랜 전통을 엿볼 수 있다.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는 다방면으로 여러가지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므로 이렇게 미국 로스쿨에서 선택 과목을 전략적으로 잘 고르면 한국에서 일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