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참여했다가 최루탄 맞아 실명한 대학생에 국가배상책임 인정
[손배]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참여했다가 최루탄 맞아 실명한 대학생에 국가배상책임 인정
  • 기사출고 2023.07.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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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부지원] 소멸시효 주장 배척

1980년대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한 대학생이 환갑을 앞두고 국가로부터 3억 8천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받게 됐다.

37년 전인 1986년 11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등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던 시절 대학생이던 A씨는 부산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경찰은 5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A씨는 최루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경찰은 A씨의 부상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씨가 보상을 받기 위해 민원을 제기하자 6개월 후 부산시 경찰국(현 부산지방경찰청)은 '최루탄에 의해 부상당한 점은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 문제는 경찰관의 소관이 아니므로 내사 종결하였음을 알려드린다'고 통보했다.

직선제 개헌과 선거로 정권이 바뀐 1988년 7월에도 민원을 제기했으나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추가 조사할 것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A씨는 실명 이후 지금까지 20여곳의 직장을 옮겨다니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등 취업과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었다. 어렵사리 잡은 직장에서는 '한쪽 시력만으로는 안전한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쫓겨나기도 했다.

사고 발생 34년이 지난 2020년 A씨의 아버지는 진실 ·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7월 '국가는 A씨에게 사과하고, 배상 등 화해를 이루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이 결정을 근거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2022가단128936)을 냈다.

공단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시위를 진압해 A씨의 실명을 초래했음을 주장하며, 배상액으로 2억 5천만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소멸시효 완성을 내세웠다. 민법상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및 국가재정법상 5년이 모두 지났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배상책임 요건인 법령 위반과 관련해서는 시위대를 향한 최루탄 발사행위는 법규에 따른 정당한 직무수행이었음을 강조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신헌기 판사는 그러나 6월 28일 정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가 A씨에게 1억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배상액 중 1억 3천만원에 대해서는 사건발생일인 1986년 11월부터 연 5%의 이자를 적용하라고 판결해 전체 배상액은 3억 8천만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에 규정된 사건 가운데 중대한 인권침해 · 조작의혹 사건 등에 대해서는 민법과 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가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과거 결정을 인용했다. 당시 헌재는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은 소멸시효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 하여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개시결정의 근거를 삼은 바와 같이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 침해사건'에 해당하므로 위 위헌결정의 효력은 이 사건에도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며 "따라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객관적 기산점을 기준으로 한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객관적 기산점을 전제로 국가에 대한 금전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권리의 소멸시효기간을 5년으로 규정한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또는 구 예산회계법 조항들 역시 그 적용이 배제되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정한 주관적 기산점과 이를 기초로 한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조 제1항 제 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 · 조작의혹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한 경우 그 피해자 및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민법 제 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와 관련하여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진실규명 결정일이 아닌 그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날을 의미한다(대법원 2020다205455 판결 등 참조)고 할 것인바, 이 사건 사고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중대한 인권침해로 인정받았음을 통하여 비로소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명백히 인식하였다고 보일 뿐"이라며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