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공정위 조사 대비해 자료 삭제한 HD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 증거인멸 무죄
[공정] 공정위 조사 대비해 자료 삭제한 HD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 증거인멸 무죄
  • 기사출고 2023.07.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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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비난 마땅하나 고의 증명 안 돼"

하도급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대비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업무용 PC 100여대를 교체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박병곤 판사는 6월 20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HD현대중공업 상무보 A씨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B씨 등 팀장 2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2022고단5).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한다는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법무법인 광장이 피고인들을 변호했다.

HD현대중공업으로부터 선박 건조공사를 위박받은 C사 등 HD현대중공업 협력사들은 2017년 말경무터 2018년 7월경까지 'HD현대중공업이 작업에 착수하기 전 하도급법 3조 1항의 서면을 교부하지 않고,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며 공정위에 HD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행위를 반복 신고했고, 공정위는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3사들의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사했다. 또 HD현대중공업의 협력사의 대표이사는 노동청에 HD현대중공업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자 A씨가 B씨 등 팀장 2명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문제가 되는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 위 지시에 따라 B씨 등 팀장 2명은 2018년 7월경부터 10월경까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실제로 문제가 되는 자료를 삭제한 조치를 취해 A씨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B씨 등 2명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됐다. B씨 등은 그중 향후 업무에 필요한 자료는 공유 목적으로 각 부서별로 서버에 저장 공간이 할당되어 있는 E-FAM, ECM 등 공유폴더 또는 외장하드 등 별도의 저장장치에 옮겨 따로 보관했다. 또 임직원들의 업무용 PC 101대를 VDI(Virtual Desktop Infrastructure, 데스크탑 가상화) 장비로 교체하고, VDI를 사용하는 임직원 82명의 VDI 계정을 교체했으며, 273명의 임직원들이 사용하던 업무용 PC의 하드디스크를 SSD로 교체하기도 했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의 각 행위 당시 피고인들이 '형사사건'인 HD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및 파견법 위반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그와 같은 결과가 발생해도 좋다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각 행위 당시 피고인들이 '형사사건'인 HD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및 파견법 위반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다거나 피고인들이 그와 같은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같은 결과가 발생해도 좋다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에게 증거인멸에 대한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1981년부터 2017년까지 하도급법위반 사건 27,622건을 처리했는데, 그 중 검찰에 고발된 사건은 349건에 불과하고, 기 비율은 1.26%에 그쳤다. 그 기간을 2017년으로 좁혀보더라도, 공정위는 2017년에 하도급법위반 사건 1,527건을 접수하고, 1,296건을 처리했는데, 그 중 검찰에 고발된 사건은 7건에 불과했다.

박 판사는 따라서 "이 사건 각 행위 무렵까지 공정위가 조사대상을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각 행위와 공정위 고발 사이에는 긴 시간간격이 존재한다"며 "피고인들이 공정위가 조선3사 중 하나인 HD현대중공업을 검찰에 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2018. 10. 1.  HD현대중공업의 각종 하도급법 위반 혐의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해 세 차례에 걸친 HD현대중공업 사업장에 대한 현장조시를 실시한 뒤 2019년 12월에야 HD현대중공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이는 각 행위 대부분이 이루어진 2018년 7∼8월로부터는 약 1년 4개월이, 각 행위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2018년 10월로부터 보더라도 약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박 판사는 또 "각 행위 무렵 피고인들을 비롯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주된 관심사는 공정위 조사에 대비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은 이 사건 각 행위를 통해 수사기관의 수사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했다"며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은 조직적으로 각 행위를 했고, 그 결과 공정위가 적절한 행정적 조치를 통해 HD현대중공업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를 시정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버렸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그러나 "각 행위 당시 피고인들에게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다는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들을 형법 제155조 제1항에 규정된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들이 크게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를 했음에도 형사처벌은 할 수 없다는 이 사건의 결론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이는 하도급법 시행을 위해 필요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과태료 부과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하도급법 제30 조의2 제2항 참조)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하도급법 체계, 모든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제27조 제4항), '도둑 열 명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른 결론"이라고 판시했다.

공정위는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5월 3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HD현대중공업 사업장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뒤, 2019년 12월 HD현대중공업에 하도급법 위반을 이유로 과징금 208억여원을 부과하고, HD현대중공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한 뒤 HD현대중공업을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