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제사주재자 판례 변경의 이유
[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제사주재자 판례 변경의 이유
  • 기사출고 2023.06.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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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상속인 차별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 이유 없다"

민법 제1008조의3은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관습과 조리에 의해 제사주재자를 정해 왔고, 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망인의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5월 11일 대법원은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이 찬성한 결과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조재연, 박정화, 안철상, 이동원, 노태악, 천대엽, 오경미, 오석준 대법관이 다수의견을,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이흥구 대법관이 별개의견을 냈다.

대법관 9명이 다수의견 찬성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을 순서대로 요약해 소개한다.

◇다수의견=2008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여성 상속인은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의 동의 없이는 제사주재자가 될 수 없으므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서 제사주재자를 정할 때 대등한 지위에서 실질적인 협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여성 상속인은 피상속인에게 아들, 손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배제된다. 이처럼 여성 상속인은 제사주재자를 정할 때 성별로 인해 남성 상속인에 비해 열위에 있게 된다.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고, 오로지 남성 또는 여성에게만 특유하게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특히 오늘날 전통적인 매장 대신 화장 등 장례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피상속인의 유체 · 유해의 귀속 또는 관리가 더 문제될 수 있는데, 이러한 피상속인의 유체 · 유해까지 남성 상속인에게 우선적으로 귀속된다는 것은 더더욱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여성 상속인보다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제1항, 제36조 제1항에서 정한 남녀평등의 이념과 조화되지 않는다.

남녀평등 이념과 조화되지 않아

여성 상속인 대신 남성 상속인이 제사주재자의 지위에 따르는 의무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묘토 등 제사용 재산의 범위는 실질적으로 제사 봉행에 사용되는 부분으로 제한되는데, 종교상의 신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고 제사가 가지는 비중도 점차 축소되면서 기존의 제사용 재산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제사주재자는 제사에 드는 비용 등을 현실적으로 부담할 뿐만 아니라, 유체 · 유해나 분묘의 관리 등에 관한 의무를 부담하는데, 남성 상속인이라고 하여 그러한 부담이나 의무를 우선적으로 지도록 하는 것도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오늘날 조상에 대한 추모나 부모에 대한 부양에서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가 없다. 장례방법도 종래의 매장 및 분묘 조성 대신 화장 후 봉안이나 자연장의 비율과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에 고조부모까지 지내는 '4대 봉사' 대신 생활을 같이하였거나 얼굴을 기억하는 조상으로 제사의 대상을 축소하기도 하고 둘 이상의 조상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제사의 횟수를 줄이는 등 제사의 형식과 절차도 점차 간소화되고 있다.

제사에서 가계 계승 의미 퇴색

이처럼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의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재의 법질서, 국민들의 변화된 의식 및 정서와 생활양식 등을 고려하면,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거나 그 지위를 우선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볼 수 없다.

제사주재자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이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거나 헌법 제9조 등에 의하여 정당화된다고 볼 수도 없다. 제사주재자로 남성 상속인을 우위에 두지 않는다고 하여 제사제도에 내포된 숭조사상, 경로효친과 같은 전통문화나 미풍양속이 무너진다고 볼 수도 없다.

이 사건 외엔 소급효 불인정

대법원은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견해의 변경은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에 중점을 두었던 관습상 제사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것"이라며 "법적 안정성과 당사자의 신뢰 보호를 위해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다. 소급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에 한해 소급하여 적용된다.

제반사정 고려해 법원이 판단

◇별개의견=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성립되지 않아 망인의 유체 · 유해에 대한 권리의무의 귀속이 다투어지는 경우, 법원은 망인의 명시적 · 추정적 의사, 망인이 생전에 공동상속인들과 형성한 동거 · 부양 · 왕래 · 소통 등 생활관계, 장례 경위 및 장례 이후 유체 · 유해나 분묘에 대한 관리상태, 공동상속인들의 의사 및 협의가 불성립된 경위, 향후 유체 · 유해나 분묘에 대한 관리 의지와 능력 및 지속가능성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누가 유체 · 유해의 귀속자로 가장 적합한 사람인지를 개별적 ·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배우자가 포함된다.

유체 · 유해의 귀속을 둘러싼 분쟁은 다양한 유형과 모습이 있다. 법원이 개별 분쟁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유체 · 유해를 관리하며 제사 기타 추모의식을 주재하기에 적합한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제사주재자 결정이라는 가족 내부 문제에서 공동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필요가 있으므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가 가장 우선되고, 여기에는 묵시적 협의가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법원은 망인이 생전에 제사주재자 또는 자신의 유체 · 유해의 귀속자를 지정한 경우에는 그 명시적 의사를, 그러한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추정적 의사를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망인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할 때 망인이 생전에 형성해 온 생활관계 등의 정황을 고려할 수 있다.

◇종중 판결=이번 대법원 판결은 종중제도와 관련해 여성 종원의 지위를 남성 종원과 대등하게 인정해온 여러 대법원 판결과 맥을 같이하는 판결이다.

즉, 대법원은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는 종래의 관습법이 더 이상 우리 법질서가 지향하는 남녀평등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고 보아 그 법적 효력을 부정하면서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성년 후손은 남녀를 불문하고 종중의 구성원이 된다고 보았다(대법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이어 여성 종중원들에게 소집통지를 하지 않고 개최된 종중총회에서 이루어진 결의는 무효라고 판시하였을 뿐만 아니라(대법 2007. 9. 6. 선고 2007다34982, 대법 2010. 2. 11. 선고 2009다83650 판결 등), 종중재산을 분배하면서 단순히 남녀 성별의 구분에 따라 분배비율, 방법, 내용에 차이를 두는 결의는 무효라고 하거나(대법 2010. 9. 30. 선고 2007다74775 판결), 종중총회의 소집권을 가지는 연고항존자를 확정할 때 여성 종중원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대법 2010. 12. 9. 선고 2009다26596 판결). 대법원은 또 모의 성과 본을 따르는 성년의 자녀 역시 모가 속한 종중의 구성원이 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 2022. 5. 26. 선고 2017다260940 판결).

"모의 성과 본 따르는 자녀도 종원"

종중제도에 대한 이러한 판결 흐름도 제사주재자에 관한 이번 판례 변경에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