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보험계약서 면책약관의 'wilful'엔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
[보험] "보험계약서 면책약관의 'wilful'엔 '미필적 고의'까지 포함"
  • 기사출고 2022.10.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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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칸서스자산운용 vs KB손해보험' 보험금 소송 원심 파기

영문 보험계약서상 면책사유에 기재된 'wilful'(고의적)은 계획적인 고의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전 대법관)는 8월 31일 칸서스자산운용이 "12억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KB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304014)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칸서스자산운용은 2007년 8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 우즈베키스탄의 개발사업 시행사인 C사에 펀드 자금 117억 6,500만원을 대출하고 그 후에도 60억원을 추가로 빌려주었다. C사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로부터 개발사업부지에 대해 영구사용권을 취득했으나 우즈베키스탄 토지법에 따르면 토지에 대한 영구사용권에는 담보설정이 불가능했다. 칸서스자산운용은 대여자금에 대한 담보를 위해 C사가 영구사용권에 기하여 보유하고 있는 개발사용권에 대해 양도담보를 설정하고, C사의 주식 전체에 대한 질권과 C사의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 전체에 대한 근질권을 설정했다. 그러나 2013년경 개발사업이 무산되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펀드 투자자들이 칸서스자산운용을 상대로 '(칸서스자산운용이 대여자금에 대해 설정한) 담보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충분한 담보가 될 수 없음에도 투자제안서에 마치 충분한 담보를 확보한 것처럼 기재함으로써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시행령 130조 2항 등을 위반하고 투자자에 대한 보호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담보가 적정하거나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이 확정되어 칸서스자산운용은 투자자들에게 12억여원을 지급하고, 이 소송의 변호사 보수, 인지대 등 소송비용으로 8,000여만원을 지출했다.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시행령 130조 2항은 "자산운용회사가 자금을 대여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호의 1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 경우 담보가액 또는 보증금액은 대여금 이상의 금액으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하여 충분한 금액이어야 한다"고 정하면서, 1호에서 '부동산에 대하여 담보권을 설정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이후 칸서스자산운용이 배상책임보험계약을 맺은 KB손해보험을 상대로 관련 소송을 방어하는 과정에 들어간 방어비용과 소송 패소에 따른 판결금에서 일부 공제금액을 제외한 돈을 보험금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보험계약상 면책사유에 있는 'wilful'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쟁점이 되었다. 원문인 영문본과 번역본이 각각 작성되어 있는 보험계약서에는 '만일 보험증권에서 영문과 국문 사이의 불일치가 있다면 영문이 국문에 우선하여 적용된다'는 내용과 함께 면책대상인 '부정행위(dishonesty)'의 유형으로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 of any law'이 기재되어 있다. 칸서스자산운용은 이에 대해 '계획적인 법령 및 규정의 위반'만을 의미한다며 계획적으로 구 간접투자법 시행령 제130조 제2항 및 이 펀드의 신탁약관 제36조 제5항을 위반한 사실이 없으므로, 원고의 손해가 '부정직행위(dishonesty)'로 인한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는 '고의적인 법령 위반(wilful violation or breach of any law)'은 결과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욕하는 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그 결과 발생을 인식하고 소극적으로 용인하는 미필적 고의도 포함되는 것이라며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은 단순히 법령의 위반을 알았거나 법령 위반이라는 결과 발생을 소극적으로 용인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계획적인 법령 위반으로 좁혀 해석해야 하는데, 원고의 담보제공 행위는 이러한 계획적인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KB손해보험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문에 따를 때, 이 사건 면책사유에 있는 'wilful'의 의미를 일반적인 고의가 아니라 번역본과 같이 계획적인 고의로 한정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으므로 면책조항의 원문에 기재된 'any wilful violation or breach'은 일반적인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며 "wilful의 의미를 일반적인 고의로 해석하는 이상 여기에서 자신의 행위에 따라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이를 행하는 '미필적 고의'를 제외할 이유가 없다(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72209 판결의 취지 참조)"고 밝혔다. 이어 "면책사유에 있는 'wilful'의 의미를 위와 같이 본다면, 원고가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시행령 제130조 제2항 등이 정하는 적정하고 충분한 담보를 설정하지 않은 행위는 이 사건 담보가 설정된 구체적 경위, 투자자에 대한 설명노력의 정도, 영구사용권에 기초한 개발사업권의 담보로서의 실질적 가치, 개발사업의 무산에 따른 담보가치의 변동과 그 예견가능성, 금융감독원에 대한 질의의 정확한 경위와 내용 등에 관한 심리 결과에 따라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그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을 모두 살펴, 원고가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시행령 제130조 제2항 등이 정하는 적정하고 충분한 담보를 설정하지 않은 행위가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여부에 대해 더 심리 · 판단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히 "이 사건 면책조항 단서의 원문은 'provided that this exclusion shall not apply to the Company's obligation to advance Defense Costs or Legal Representation Expenses under extension 6.(a) hereof until a final adjudication in any proceeding establishes such a deliberately fraudulent act or omission or willful violation or breach.'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번역본과 달리 '다만 이 면책조항은 고의적 기망행위 또는 법령위반에 관하여 소송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이 약관 부칙 제6조 a항에 따른 피고의 선지급 방어비용 또는 법률대리인 선임비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이라며 "원심은 위 원문을 '법원의 고의의 기망행위 또는 법령위반행위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이 면책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역한 번역본을 그 판단근거 중 하나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올바른 원문을 근거로 삼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런데도 원심은 면책사유에 있는 'wilful'의 의미가 오로지 계획적인 고의에 한정된다고 전제하고, 원고의 행위가 그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판단만을 하였을 뿐, 나아가 원고의 행위가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법령 위반에 해당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심리를 진행하지 않은 채 피고가 면책되지 않는다고 단정하였다"며 "원심판결에는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KB손해보험을 대리했으며, 칸서스자산운용은 법무법인 지평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