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항생제 잔류가능성 표시 안 해 무항생제 계란에서 항생제 검출…동물의약품 업체, 60% 배상하라"
[손배] "항생제 잔류가능성 표시 안 해 무항생제 계란에서 항생제 검출…동물의약품 업체, 60% 배상하라"
  • 기사출고 2022.08.0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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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표시상 결함"…제조물책임 인정

무항생제 유정란을 생산하는 양계업자가 항생제 성분 잔류가능성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동물의약품을 사용했다가 항생제 성분이 검출되어 손실을 입었다. 대법원은 동물의약품업체에 제조물책임을 인정, 손해의 6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7월 14일 전북 순창군에 평사(平舍) 형태의 축사 두 동을 설치하고 무항생제 유정란을 생산 · 납품하는 양계업자 A씨가 "항생제 성분 검출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동물의약품업체인 B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다213289)에서 B사의 상고를 기각, B사의 책임을 60% 인정해 "B사는 A씨에게 3,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2년 3월 16일경 제1동 축사에 새로운 닭을 들여놓고 3월 21일경부터 4월 30일경까지 항생제 성분인 엔로플록사신을 주된 성분으로 하는, B사가 제조한 동물의약품을 구입해 제1동 축사의 닭에게 투약하고, 2012년 7월 20일경 제2동 축사에 새로운 닭을 들여놓고 7월 30일경부터 9월 4일경까지 같은 약품을 구입해 제2동 축사의 닭에게 투약했다. 이 약품의 사용설명서에는 닭의 휴약기간이 12일로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는 이 약품 투여 후 12일이 경과되면 가축의 체내와 계란, 우유 등에 잔류허용기준 이하로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A씨는 2013년 3월 11일 계란을 납품하는 생활협동조합으로부터 A씨가 납품한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통보를 받아 다음날부터 계란을 납품하지 못했다. A씨는 3월 14일경 닭 약 5,200마리를 조기에 노계로 처분하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검사를 했으나, A씨가 생산한 계란에서 계속하여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되었다. 이에 A씨는 닭이 계분 섭취로 엔로플록사신이 체내에 잔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고 계분을 치운 다음 검사를 하자 더 이상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되지 않았고, 2013년 5월 1일부터 계란을 다시 납품할 수 있었다. A씨는 여러 차례 B사에 검출사고에 대한 손해배상과 함께 '평사에서 사육하는 닭에게 이 약품을 먹이지 말라'는 취지의 문구를 넣어 줄 것을 요구했으나 B사가 응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2012. 9. 7.경 이후 이 약품 등 엔로플록사신이 포함된 약품을 닭들에게 투여하지 않았는데도 그로부터 6개월 이상이 지난 2013. 3.경까지 원고가 납품한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는 이 약품을 투여한 닭들이 배설한 계분에 엔로플록사신이 포함되었는데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원고 닭들의 특성상 바닥에 떨어진 계분을 섭취하면서 거기에 포함된 엔로플록사신도 함께 섭취하여 다시 체내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휴약기간이 지나서도 엔로플록사신이 체내에 남아있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약품을 투여한 닭이 엔로플록사신 일부를 체내에서 흡수 또는 대사하지 못한 채 계분과 함께 배출할 수 있고,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의 경우 축사 바닥에 계분을 배설하므로 이를 다시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은 피고로서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사정"이라며 "따라서 피고는 이 약품이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에게 투여될 경우 계분을 배설하고 다시 섭취하는 과정에서 닭들의 체내에 휴약기간 이상의 기간 동안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엔로플록사신은 계란에 잔류가 허용되지 않은 성분으로 휴약기간이 지난 뒤 엔로플록사신의 잔류가능성은 양계업을 운영하는 소비자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고, 이 약품을 제조 · 판매하는 피고로서는 휴약기간이 지나도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하여 주의 깊게 조사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피고가 '이 약품을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에게 투여할 경우 계분을 통하여 휴약기간인 12일이 지나더라도 체내에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다'는 내용을 표시할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으나, 피고는 이 약품의 휴약기간을 닭의 경우 12일로 표시하였을 뿐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정을 표시하지 않았다"며 "원고가 납품한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된 것은 이러한 표시상의 결함에 따른 것으로 피고는 이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제조업자 등이 합리적인 설명, 지시,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였더라면 당해 제조물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피해나 위험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때에는 그와 같은 표시상의 결함(지시 · 경고상의 결함)에 대하여도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다52287 판결 등 참조)"며 "원심의 판단에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 표시상의 결함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동종 제품에 관하여도 닭에 관한 휴약기간이 12일로만 표시되어 있어 피고로서는 위와 같은 휴약기간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른 제조업체들이 이미 검증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체적인 조사 필요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한 점, 원고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문제 삼기 이전에 피고에게 이 악품의 휴약기간에 관한 이의가 제기되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약품의 표시상 결함으로 인한 손해에 관한 책임을 모두 피고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며 B사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