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법 이론 수입의 한계
외국 법 이론 수입의 한계
  • 기사출고 2007.10.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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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완 교수]
한국 법학이 듣는 오명 중 하나가 수입법학이라는 말이다.

◇문재완 교수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논의되는 법 이론을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현상을 비꼬는 말이 수입법학이다.

수입법학은 법학계와 법조계가 따로 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였다. 법조계에서는 법학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법학계에서는 법조계가 실무에 함몰되어 선진 이론에 무지하다고 비판하던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법학자들도 외국에서 제기되는 희한한 이론을 '보석 찾기'하듯이 찾아서 소개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법조 실무가들도 외국에 유학을 많이 가면서 외국 이론을 직접 소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판례가 쌓이면서 외국의 새로운 이론 또는 외국의 새로운 판례에 의존하여 논문을 작성하거나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은 크게 줄어 들었다.

하지만, 법학자들이 수입법학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다. 지금도 외국 유학을 경험하고 돌아와 법학계에 이름을 알리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새로운 외국 법학이론의 소개다. 학자들 중에는 외국의 법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글을 자기의 대표 논문이라고 자랑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 나타나고 있는 수입법학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 안타깝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운 수입법학을 수입법학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법조계의 분위기에 있다.

최근 수입법학은 법학계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학계는 물론이고 실무계도, 관계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앞 다투어 참조하는 것이 외국의 입법례이고, 외국의 판례다. 그러한 입법이, 그러한 판례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났는지에 대한 검토는 부족하고, 결과만 들여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보통신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 수입법학이 추상적인 이론수입이었다면, 요즘 수입법학은 개별적 사안의 해결에 필요한 실무중심이라는 것이 차이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그러한 이론 또는 판례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외국의 사회적 맥락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수입한다는 점에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얼마 전 필자가 연구이사로 있는 한국언론법학회는 일본 도쿄에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인터넷 포털의 법제와 문화를 동시에 비교하는 자리였다. 법제 쪽은 법학자 내지 변호사가 담당하고, 문화 쪽은 사회학 내지 언론정보학 전공자가 담당하여 학제적 연구를 시도하는 동시에 국가별로 비교하는 국제적 연구를 추구하는 세미나였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인 것 같아 겸연쩍지만, 다른 세미나에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다양한 관점이 제기되었다. 인터넷 포털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나라마다 다르고, 인터넷 포털을 규제하는 법령 또는 판례법이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법률가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새로운 문제가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면 그 현상에 대한 해결책도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인터넷 포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포털을 통하여 명예훼손적 글, 음란물, 불법복제물 등이 확산되는 현상은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터넷 포털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사적 검열이 발생하여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저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적 해결방식이다. 법률도 만들고, 판례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 이 이론, 법제, 판례는 우리나라에 그대로 수입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결방식이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인터넷 포털을 사용하는 문화 역시 동일하여야 한다. 음란물에 대한 인식, 저작권에 대한 인식,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에 대한 인식, 더 나아가 그러한 인식이 모여서 형성되는 문화가 동일할 때 법리가 동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욘사마가 좋다고 욘사마의 사진집이 출간되기를 기다려 서점 앞에서 줄을 서는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저작권 침해와 이효리가 좋다고 그의 노래를 공짜로 다운받아 내 mp3에 저장하여 듣는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저작권 침해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없다.

수입품은 수입품으로 대접하고, 그것을 참고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법논리를 개발할 때 비로소 판결 하나 하나가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 본지 편집위원(conlaw@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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