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오토바이 무면허운전 중 사고났다고 건강보험급여 환수 위법"
[교통] "오토바이 무면허운전 중 사고났다고 건강보험급여 환수 위법"
  • 기사출고 2021.12.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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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 비해당"

70대 노인이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 대학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한 건강보험급여를 다시 이 노인에게 받아낼 수 있을까.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가 없는 A(사고 당시 78세)씨는 2019년 10월 3일 오후 5시 45분쯤 전기오토바이(정격출력 800W)를 운전하여 전남에 있는 마을 앞 도로를 지나던 중 공동창고 담에 부딪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이 사고로 2019년 10월 15일경부터 2020년 2월 29일경까지 대학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요양기관에 요양급여비용 7,200여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오래 전부터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 없이 소형 오토바이 등을 운전해 왔는데, 2019년 1월경 새로 구입한 전기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에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무면허운전 등 A씨의 중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사고가 발생하였고, 국민건강보험법 53조 1항 1호에 따른 보험급여 제한 대상에 해당하므로, 결국 A씨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것'이라는 이유로, 2021년 2월 A씨에게 요양급여비용 7,200여만원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는 처분을 내리자 A씨가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2021구합64566)을 냈다. 국민건강보험법 53조 1항 1호에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이에 대한 보험급여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11월 26일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원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가 사고와 관련하여 보험급여 제한사유가 있음에도 보험급여를 받는 등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7,200여만원의 징수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고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고, 다만, 사고 당시 오토바이의 진행 경로나 사고 현장의 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고령인 원고가 전방주시의무를 위반하였거나 조향장치 작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며 "중대한 과실이라 함은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만 하였다면 손쉽게 위법, 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가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한 경우처럼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말하는데, 원고의 그 정도 주의의무 위반을 가지고 중대한 과실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의 보험급여 제한사유가 되려면 해당 보험사고가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발생하여야만 하는데, 사고의 원인이 될 만한 범죄행위는 원고의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뿐"이라고 지적하고, "피고는 무면허운전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7호에 규정된 이른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므로 이 사고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나, 위 규정은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기 위하여 차의 교통으로 업무상과실치상죄 등을 범한 운전자라 하더라도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종합보험 등에 가입한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형사처벌상 특례를 부여하되, 무면허운전 등의 경우에는 특례의 예외로 인정함으로써 이를 운전 시 지켜야 할 중대한 의무로 정한 것으로서 그 입법취지 자체가 국민건강보험급여 제한사유를 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의 입법취지와 다를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에서 '차의 운전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하여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무면허운전 사고의 경우에도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보는 경우를 예정하고 있기도 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운전자가 면허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야기하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그 사고가 국민건강보험법 53조 1항 1호에서 정한 국민건강 보험급여 제한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20두41429 판결 취지 등 참조)"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죄는 면허 없이 운전하려는 고의가 있어야 성립하는 고의범이므로,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의 '고의로 인한 범죄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고는 고령인 원고의 부주의한 조향장치 조작이나 전방주시 소홀 등 운전상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면허 없이 운전을 한 것 자체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무면허운전에 전적으로 기인하거나 그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 사고와 관련하여 2020년 1월 광주지검으로부터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혐의에 관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