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혼자 운전할 수 없다'고 중증장애인에 전동휠체어 비용 지급 거부 위법
[행정] '혼자 운전할 수 없다'고 중증장애인에 전동휠체어 비용 지급 거부 위법
  • 기사출고 2021.12.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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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무효"

서울 강서구청이 '혼자 힘으로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중증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비용 지급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중증장애인보다 상대적으로 거동이 쉬워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조종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전동휠체어 비용을 지원하면서 중증장애인에게는 이를 지급하지 않도록 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등은 위헌 · 위법으로 무효라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12월 3일 뇌병변과 지체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인 A씨가 "보조기기급여 거부처분을 취소하라"며 강서구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2021구합999)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0년 12월 강서구청에 보조기기인 전동휠체어 비용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혼자 힘으로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스스로 전동 휠체어를 조종할 수 없는 장애인은 보조인 조종용 전동휠체어를 지급해 주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보조인 조종용 전동휠체어를 합리적 이유 없이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규정과 하위 고시 규정의 행정입법부작위는 헌법상 평등원칙과 비례원칙에 위반되고 헌법과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 ·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 · 위법하여 무효"라고 밝혔다. 따라서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등에 따라 원고의 급여신청을 거부한 처분 역시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급여법 시행규칙은 급여대상 전동휠체어의 용도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 사용'하는 경우로 제한하면서도 별도로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에 대한 급여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나아가 "원고는 간이인지기능 검사(MMSE) 결과가 24점 이상, 일상생활동작 검사(MBI이용) 결과 적합 판정 및 평지에서 100m 이상 보행이 어려울 것과 팔의 기능 장애로 팔에 대한 맨손 근력검사 결과가 최대근력 3등급 이하일 것 등 관계 법령상의 의료급여 지급기준을 모두 충족하였음이 인정된다"며 "나아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조작능력평가 검사결과에 대하여도 적합 판정을 내렸고, 진료소견으로도 전동휠체어로 이동 및 보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기재하였음에도, 피고는 적법한 이유 제시 없이 법령에 위반하여 원고의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을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원고가 이러한 지급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음을 전제로 한 피고의 처분은 이 점에서도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에 앞서 "우리 공동체의 '사회계약'은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체결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가 존엄한 주체인 동등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공동체와 헌법질서를 세웠고, 그에 따라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은 허용될 수 없다. 우리의 사회계약은, '장애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의 사랑하는 자녀, 가족,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상호의존적 공동체라는 생각에 그 가치 기반을 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판결과 관련, "중증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등 보조기기가 갖는 의미와 관련 법령의 위헌 및 위법을 확인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성명을 내고, "이 판결을 계기로 보건복지부 등 행정청이 중증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등 보조기기가 단순한 운행도구가 아닌 기본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보조기기임을 확인하고, 이에 따른 의료급여법, 중증장애인 보조기기급여 지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고시 등 관련 법령을 제 ·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