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지적장애인 명의로 주유소 운영…장애인에 과세 무효"
[조세] "지적장애인 명의로 주유소 운영…장애인에 과세 무효"
  • 기사출고 2021.10.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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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과세관청이 간단한 확인만 했어도 알았을 것"

지적장애인의 명의를 빌려 주유소를 운영했는데도 과세관청이 명의자로 되어 있는 지적장애인에게 세금을 부과했다가 무효 판결을 받았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8월 20일 3급 지적장애인인 A씨가 "납세의무가 없음을 확인해달라"며 국가와 여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2020구합75057)에서 "원고와 국가 사이의 부가가치세 등 채무와 원고와 여주시 사이의 등록면허세 등 채무는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다지원이 A씨를 대리했다.

지능지수(IQ)가 50으로 정신지체가 있고, 사회연령이 8세에 불과하며, 자신의 이름 외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없는 등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A씨는, 누나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다가 2014년경 실종되어 수년 뒤에 발견됐다. 이에 앞서 2013년 11월경 대출브로커를 통해 A씨를 소개받은 B씨는 2014년 3월 A씨 명의로 주유소 사업자등록을 하고 12월에 폐업할 때까지 부가가치세 1억 2,700여만원과 종합 · 지방소득세, 등록면허세 등 모든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가 과세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A씨에게 부과된 세금은 가산세와 가산금 포함 부가가치세 2억 200여만원, 종합소득세 1억 9,600여만원, 지방소득세 1,390여만원, 등록면허세 3만여원 등이다.

재판부는 "과세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그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며,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지 여부를 판별할 때에는 그 과세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의 목적 · 의미 ·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다24240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고 전제하고, "①원고는 단순히 사업자등록 명의를 대여한 명의대여자에 불과하고, 주유소를 실제로 경영한 자가 B임이 명확히 밝혀진 점, ②원고의 지적장애 정도에 비추어 볼 때 사업자등록의 법률적, 경제적 의미를 이해하고 주유소의 사업자 명의를 대여하였다고 볼 수 없고, 실제 그 운영에 관여한 바도 없어 사업자 명의를 대여한 데 원고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원고는 일상경험에 대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할 뿐 인지기능이 전반적으로 지체되어 있고, 자신의 이름 외에는 한글을 읽고 쓸 수도 없었으므로, 과세관청으로서는 각 부과처분 당시 간단한 사실확인만 하였더라도 원고가 주유소를 실제 경영한 사람이 아님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인 점, ④원고가 실종되었다가 각 부과처분으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보호자에게 발견되었는바, 제소기간 내에 각 부과처분에 대한 불복절차를 진행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각 부과처분은 주유소의 실제 운영자가 아닌 자에게 부과된 것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 · 명백하여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B씨는 A씨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1, 600여만원을 결제하고, 대부업체로부터 2,570만원을 대출받은 혐의(준사기)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