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회식 후 무단횡단하다가 차에 치였어도 산재"
[노동] "회식 후 무단횡단하다가 차에 치였어도 산재"
  • 기사출고 2021.10.0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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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사업주 관리 회식에서의 음주로 정상적인 판단능력에 장애"

서울행정법원 이승재 판사는 최근 회식 후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여 지주막하 출혈 등을 진단받은 A씨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20구단54442)에서 "요양급여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게이트가 A씨를 대리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회사에서 영업본부 과장으로 근무하며 식자재 납품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A씨는 2018년 10월 18일 회사 사옥에서 열린 식자재 활성화 TF 회의 종료 후 인근식당에서 오후 6시부터 오후 9시쯤까지 진행된 1차 회식에 참가했다. 1차 회식 후 A씨, A씨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 유통팀에서 근무하는 직원 2명 등 4명은 인근 통닭집에서 같은 날 오후 11시까지 2차 회식을 하며 술을 마셨다. 그러나 2차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신길역 앞 편도 4차로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10월 19일 오전 0시 58분쯤 주행 중이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지주막하 출혈 외상성, 광대뼈와 상악골 골절, 안와골절 상 · 하부 등을 진단을 받은 A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고는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 하에 있던 1, 2차 회식에서의 음주로 인하여 정상적인 판단능력에 장애가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이러한 주취상태가 원인이 되어 사고를 당한 것으로 봄이 상당한바, 이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차 회식은 식자재 활성화 TF 회의에 전국의 식자재 직거래 영업담당자들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개최된 회식인바, 1차 회식에는 옆 부서의 부서장과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원고의 직속 상사(본부팀장)도 함께 참석하였고, 회식의 개최 경위 및 참석인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1차 회식 당시 상사 및 부서장 등의 격려를 받으며 상당한 양의 술을 마셨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2차 회식은 1차 회식에 비해 소수의 인원이 참석하기는 하였으나, 회의를 주관한 원고와 서울유통파트 소속 직원 2명이 참석한 점, 서울팀 유통파트장이 자신의 부서원에게 법인카드를 전달하여 2차 회식 비용을 결제하도록 한 점, 평소 원고와 별다른 친분이 없던 서울유통파트 부서원 역시 2차 회식에 참석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2차 회식은 단순한 사적모임이 아닌 서울 지역 담당자들이 본부의 업무담당자들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또 "원고는 회의를 직접 주관한 담당자로 회의 직전까지 회의 준비를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이고, 회의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며 발표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그 무렵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처럼 원고는 강도 높은 업무 직후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1, 2차 회식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적은 양의 음주로도 쉽게 만취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는 왕복 7차로 도로를 무단횡단 중 편도 1차로 위치에서 주행 중이던 자동차와 충돌하였는데, 사고 장소는 바로 인접한 지점에 무단횡단 방지를 위한 중앙 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무단횡단을 하기에 위험한 장소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그 무렵 원고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상태였다면 쉽사리 무단횡단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2013두25276 등)에 따르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회식 과정에서 근로자가 주량을 초과하여 음주를 한 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 부상 · 질병 · 신체장해 또는 사망 등의 재해를 입은 경우 이러한 재해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 이때 상당인과관계는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6두54589 판결 등 참조).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