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위임계약 맺고 일했어도 종속관계 인정되면 근로자"
[노동] "위임계약 맺고 일했어도 종속관계 인정되면 근로자"
  • 기사출고 2021.05.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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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뇌출혈 진단 받은 정수기 수리기사 산재 인정

위임계약을 맺고 정수기 설치, 수리 등의 일을 수행했더라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자이고, 따라서 과로로 뇌내출혈이 발생했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이 나왔다. 

A(42)씨는 2016년 10월 1일 B사와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B사 지점으로부터 정수기의 배달, 설치, 수리 업무 등을 배당받아 수행하다가 2017년 5월 31일 위임계약을 해지했다. 위임계약 해지 약 1주일 후인 6월 '뇌간의 뇌내출혈' 진단을 받은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였으나, 'A씨는 정수기 수리업을 하는 사업주일 뿐 근로자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되자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2019구단66371)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이새롬 판사는 5월 13일 "원고는 위임계약의 형식이나 문구에도 불구하고 실질은 B사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마중이 A씨를 대리했다.

이 판사는 "이 사건 사업장은 콜센터를 통하여 고객으로부터 요청받은 서비스 업무를 원고에게 배정하고 원고는 사업장으로부터 배정받은 특정 지역의 고객에 대한 정수기 설치, 수리 업무 등을 수행하였고, 원고가 어떠한 업무를 수행할 것인지 사업장이 정하였다는 점에서 사업장이 원고에게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원고는 매일 아침 8시경 사업장 지점으로 출근하여 지점장으로부터 정수기 설치, 수리 업무의 배당을 받았고 퇴근 시에도 지점장이 개설한 네이버 밴드에 퇴근 보고를 하였으며, 정수기 설치, 수리 등 업무를 수행한 후 고객으로부터 PDA에 확인서명을 받고 이를 위 밴드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지점장에게 실시간으로 업무보고를 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에게 고혈압 등 이 사건 상병의 유발인자가 되는 개인적 소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분명히 인정되고, 이러한 과로와 업무상 스트레스가 상병을 유발 내지 자연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며 "따라서 원고의 업무와 상병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이와 달리 판단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정수기 수리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이 사건 사업장에서 배당받은 정수기 수리업무를 주 6일 상시 수행하였으므로 다른 사업장이나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정수기 설치, 수리 업무를 하여 별도의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2016, 2017년에 사업자로서 올린 소득이 전혀 없었다.  A씨는 정수기 설치, 수리 업무시 B사 상호가 기재된 작업복, 가방, 명함을 사용하였고, B사는 A씨에게 정수기 설치, 수리기사로서의 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휴대전화, 유류비 등을 지급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