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낙태중 울음 터뜨린 아이 죽인 의사…살인 유죄, 낙태 무죄
[형사] 낙태중 울음 터뜨린 아이 죽인 의사…살인 유죄, 낙태 무죄
  • 기사출고 2021.03.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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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살아있는 아이 살해…살인 고의도 인정할 수 있어"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월 25일 낙태수술 중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양동이에 담가 숨지게 한 산부인과 의사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2108)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 살인과 사체손괴,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업무상 촉탁낙태 혐의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무죄가 확정됐다.

A씨는, 산모인 B씨와 B씨의 어머니로부터 요청을 받고, 2019년 3월 20일 오전 11시쯤 제왕절개 방법으로 낙태수술을 했으나, 아이가 산 채로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태아가 이미 34주 가량 성장하여 몸무게가 약 2.1㎏에 달했으며, A씨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미리 준비해둔 4리터들이 플라스틱 양동이에 아이의 온 몸을 담가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아이를 살해한 후 사체를 냉장고에 넣어 냉동시킨 다음 의료폐기물인 것처럼 폐기물 수거 업체에 넘겨 소각되게 했다.

A씨와 변호인은 "낙태시술 중 모체에서 배출된 태아는 단일제대동맥증후군이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므로 살인죄의 객체가 되지 아니하거나, 양동이에 아이를 집어넣기 이전 이미 아이는 사망한 상태였으므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고, 살인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살아 있는 상태로 나온 출산 직후의 아이를 물이 담긴 양동이에 집어넣어 살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이 최소한의 의료행위조차 하지 아니한 채 살아있는 아이를 물이 담긴 양동이에 집어넣고 상당한 기간 방치한 점에 비추어 살인의 고의가 있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살인죄 유죄를 인정했으며, 항소심과 대법원도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1심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낙태 수술에 참여하였던 마취의사는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게 아이가 1~2초 정도 약한 소리로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하였고,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피고인이 수술 전 자궁 내에서 이미 태아가 사산한 상태라고 설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도중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고, 그와 같은 일은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하였는데, 마취의사가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경위에 비추어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피고인도 검찰에서 '아이가 살아서 태어날 것은 예상되었다. 탯줄을 자른 후 양동이에 넣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고, 아이에게 다른 조치를 한 적은 없었다. 물에 담긴 양동이에 아기를 집어넣으면 아기는 당연히 죽는다'고 진술하였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또 "제왕절개 수술 직전에 시행한 검사에서도 산모와 태아 모두가 정상 소견이었고, 아이가 다른 아이와 외관상 별다른 차이 없이 출산하였음에도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불과 수십 초 만에 사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도 아이를 양동이에 넣기 전 아이가 사망하였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고 진술한 이외에 달리 객관적인 판단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촉탁낙태 혐의 무죄와 관련,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변형된 형태이지만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에 해당하므로, 형법 270조 1항에 관하여 선고된 헌법불합치결정은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이라고 지적하고, "헌법재판소법 제47조 제3항 본문에 따라 형벌에 관한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헌결정이 선고된 경우 그 조항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므로, 법원은 해당 조항이 적용되어 공소가 제기된 피고사건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 "사람의 생명은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고 그 자체가 목적이며 한 번 잃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어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고, 이는 신생아의 생명도 마찬가지"라며 "비록 피고인이 산모의 모친으로부터 낙태수술을 의뢰받았다고 하더라도, 낙태수술의 결과 태어난 신생아를 살해할 권리가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고, 피고인의 이러한 살인행위는 우리 사회의 가장 고귀한 절대적 가치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서 그 결과가 매우 중하고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