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비종교적 신념 따른 예비군훈련 거부 무죄"
[형사] "비종교적 신념 따른 예비군훈련 거부 무죄"
  • 기사출고 2021.02.2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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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정당한 사유' 해당

종교적 신념이 아닌 '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경우도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같은 판단이 현역병 입영을 거부할 경우에도 적용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월 25일, 약 2년간 16회에 걸쳐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소집통지서를 송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한 혐의(예비군법 · 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9도18442)에서 이같이 판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는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A씨는,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여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그것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A씨는 군 입대를 거부할 결심을 하고 있었으나, 입영 직전 이를 알게 된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군에 입대했다. A씨는 군에 입대하여 신병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적에게 총을 쏘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대를 후회하였고, 그 후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 관리병에 지원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A씨는 군에서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되었으나,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의 거부'라는 비종교적 신념에 따라 일체의 예비군훈련 등을 모두 거부했다가 기소되었으나,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상고했다. 1심과 항소심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2018. 11. 1. 선고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후에 선고됐다. A씨는 병역의무 중 가장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있는 현역 복무를 이미 마쳤음에도 예비군훈련만을 거부하기 위하여 수 년간의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형벌의 위험,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 등을 모두 감수했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 윤리적 · 도덕적 · 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하고,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경우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와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고,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도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라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와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를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 · 도덕적 · 철학적 신념 등에 의한 경우라도 그것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 거부에 해당한다면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와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