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법원 명령 불구 검사가 수첩 원본 제출 거부…국가배상책임 인정
[손배] 법원 명령 불구 검사가 수첩 원본 제출 거부…국가배상책임 인정
  • 기사출고 2021.01.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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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 옹호 의무 위반"

검사가 수첩 사본을 증거로 3억 2,000여만원의 전화대출사기 혐의로 피고인을 기소했으나 법원의 명령에도 수첩 원본을 제출하지 않다가 7개월이 지나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수첩 원본을 제출했으나, 수첩의 필적이 피고인의 필적과 상이한 필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국과수 감정결과 등에 따라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피고인이 형사보상에 이어 소송을 통해 국가배상도 받게 됐다.

울산지검 검사는, A씨가 작성한 것으로 판단한 수첩의 기재내용과 이에 일치하는 피해자들의 신고 내역 등으로 범행 일시와 피해자, 편취금액 등을 특정해 2014년 12월 2일 전화대출사기 혐의로 A씨를 체포한 뒤 같은 달 10일 구속기소하고 수첩 사본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A씨는 이 수첩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였고, A씨의 변호인은 1심을 맡은 울산지법 재판부에 수첩 원본이 첨부된, A씨 등이 재판받아 확정된 다른 사건 기록의 문서송부촉탁과 필적 감정을 신청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필체와 수첩의 필적의 동일성 여부를 감정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울산지검에 위 기록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했으나, 검사는 소송기록의 공개로 인하여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등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며 수첩 원본 등에 대한 문서송부에 응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이에 A씨의 변호인이 재차 압수물송부촉탁과 필적 감정을 신청하자 1심 재판부는 울산지검에 압수물송부촉탁 또는 압수물 대출 신청의 방법으로 수첩 원본의 제출을 명하였으나, 검사가 관련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않아 결국 수첩 원본에 대한 증거조사와 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결국 2015년 7월 '증거로 제시된 수첩 사본 등 일부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사가 불복해 항소하며 항소심에서 수첩 원본을 제출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문서감정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 수첩의 대부분의 필적과 A씨의 필적이 상이한 필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회신한 점 등을 감안해 2017년 4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고, 이후 검사가 상고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A씨는 이후 울산지법에 형사보상을 청구하여 2,685만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은 데 이어 검사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4,800여만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2020가단5107189)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준구 판사는 12월 8일 A씨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국가는 원고에게 88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사는 먼저 대법원 판결(2011다48452 등)을 인용,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법원이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마련되어 있는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조치를 이행할 것을 명하였고, 관련 법령의 해석상 그러한 법원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경우라면, 법에 기속되는 검사로서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할 직무상 의무도 있다"고 전제하고, "이 사건 수첩 사본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증거로 신청되었고 위 수첩 원본이 첨부되어 있는 또 다른 사건은 종국되었으며 원본과 사본을 특별히 구별할 이유도 없으므로(위 수첩 원본의 제출로 인하여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 · 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원고에게는 열람 또는 등사 등에 관하여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검사가 위 수첩 원본을 제출하지 아니할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사유 등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아무런 사유가 없는 점, 그럼에도 검사는 관련 형사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수첩의 원본을 제출하지 않다가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원본을 제출하였고, 그에 따라 문서감정이 이루어진 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위 수첩의 대부분 필적과 원고의 필적이 상이한 필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회신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법원이 위 수첩 원본의 제출을 명한 이상 법에 기속되는 검사로서는 당연히 법원의 그러한 결정에 지체없이 따랐어야 함에도 약 7개월 동안 법원의 결정에 반하여 증거의 제출을 거부함으로써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위와 같은 증거제출 거부행위 당시 검사에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과실도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따라서 "위 검사가 소속된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에 따라 원고에게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 판사는 A씨가 구금되어 있던 2014년 12월 2일부터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2015년 5월 29일까지 179일간의 도시일용노임 기준 일실수입 상당의 손해 1,500여만원에 위자료 2,000만원을 더한 금액에서 A씨가 받은 형사보상금 2,685만원을 공제한 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