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승용차로 출근 중 신호위반 교통사고로 사망했어도 신호등 흠 등 다른 사정 있으면 산재"
[노동] "승용차로 출근 중 신호위반 교통사고로 사망했어도 신호등 흠 등 다른 사정 있으면 산재"
  • 기사출고 2020.09.2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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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배면등이어 신호착각 가능성 커"

근로자가 승용차로 출근 중 신호위반 교통사고로 사망했더라도 교통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근로자의 신호위반 운전때문에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제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현룡 부장판사)는 9월 8일 승용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A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20구합5267)에서 이같이 판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무법인 원이 원고를 대리했으며, 제주도가 피고보조참가했다.

2019년 8월부터 건물청소, 방역 등을 수행하는 회사에서 고객사 관리 및 경영관리를 담당하는 팀장으로 재직하여온  A씨는 2019년 10월 18일 오전 8시 30분쯤 제주시에 있는 자택에서 승용차로 출근하던 중, 신호등이 설치된 제주시 건주로에 있는 교차로 앞 정지선에서 45초간 정차하였다가 적색신호임에도 그대로 진입하여 북쪽에서 남쪽으로 직진하다가, 신호에 따라 같은 교차로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운행하던 버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는 '출퇴근 재해'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3호), 이 사건 교차로가  A씨의 통상적인 출근 경로상에 위치하여 있으므로,  A씨가 승용차를 운전하여 출근하다가 발생한 이 사건 재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이 사건 교통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A씨의 신호위반 운전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고, 교차로 내의 신호등 설치 · 관리상의 하자가 상당한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비록 A씨에게 과실이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재해가 오로지 또는 주로 A씨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2002두13079 판결 등)은 여기서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는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사건 교차로의 경우, A씨 차량 진행방향의 제1주신호등은 정지선 위에 설치되어 있어 정지선에 맞추어 정차한 A씨의 시야에서는 제1주신호등을 볼 수 없다. 재판부는 또 교차로의 남쪽은 왕복 7차로의 넓은 도로여서 북쪽에서 진입하는 차량 운전자가 한눈에 반대방향 차로까지 확인하기는 어려운 구조임에도, 제2주신호등은 반대방향 차로 위에 설치되어 있어 즉, 배면등이어 운전자가 신호등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신호등의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자신의 진행방향이 아닌 다른 진행방향의 신호등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A씨가 정차한 위치에서는 교차로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는 차량을 확인할 수 없고(교차로 모퉁이에 있는 건물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는 차량들의 통행은 A씨가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에 끊긴 상황이었으므로, A씨가 주변 교통상황을 살펴 신호 변경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다른 방향 차선의 교통상황이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A씨가 적색신호임을 인식하고도 무리하게 신호를 위반하면서 교차로를 통과해야 할 만한 사정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1월 1일 개정된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에 의하면, 교차로 건너편에 설치하는 제2주신호등은 진행방향 도로의 중앙에 위치하여야 하고, 배면등(반대방향 차로에 설치되는 신호등)은 설치가 금지된다. 이와 같이 배면등 설치를 금지한 이유는, 배면등을 설치할 경우 운전자가 신호등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다른 진행방향의 신호등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고, 제주도 역시 그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여 제주도 내에 설치된 배면등을 조사 ·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