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반도체 부품회사에 근무하다가 혈액암으로 사망…산재"
[노동] "반도체 부품회사에 근무하다가 혈액암으로 사망…산재"
  • 기사출고 2020.06.0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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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

반도체 관련 부품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혈액암에 걸려 숨진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김 모씨는 2011년 3월 세라믹 기술을 이용하여 반도체 관련 전자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51세때인 2014년 8월 29일 혈액암의 일종인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이 사건 상병) 진단을 받고 종양제거술을 받았으나 같은해 9월 13일 사망했다. 이에 김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거절되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2018구합69677)을 냈다.

김씨가 일한 사업장은 저온동시소성 세라믹소재(LTCC)를 이용한 세라믹 제품을 생산하였는데, 이 세라믹 제품은 반도체 칩의 양품 · 불량 여부를 테스트하는 장비의 부품인 프로브 카드(probe card)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 세라믹 제품의 제조공정 중 펀칭 공정에 근무했던 김씨는 근무 중 제품 보호를 위해 클린룸용 방진복을 착용하였으나, 호흡기보호구, 보호장갑, 보안경 등 별도의 개인보호구는 지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상병 발병 전 별다른 특이 질병력이 없었고, 기초 질환이나 가족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음주와 흡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5월 29일 "김씨는 소속 회사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였고, 상병의 악화로 인하여 사망에 이른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따라서 김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이 세라믹 제품 제조공정 중 펀칭 공정에서 근무하였는데, 이는 시트성형 공정 이후 단계에서 제품에 홀을 가공하는 작업이므로 시트성형 공정에서 사용하거나 발생한 유해물질이 작업 과정에서 펀칭 공정 근무자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또한 펀칭 공정에서 접착식 끈끈이 롤러를 사용하여 이물질 제거작업을 하였는데 롤러에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펀칭 공정 외에 각 공정의 작업 장소들은 층별로 하나의 공조시스템을 사용하였고 내부적으로 공기를 재순환하는 클린룸 설비의 특성상 다른 작업 장소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함께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역학조사에서는 펀칭 공정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는 톨루엔이 배합실보다 높은 수치로 검출되었고, 배합실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자일렌과 포름알데히드도 펀칭 공정에서 검출되었다. 재판부는 포름알데히드 측정결과는 노출기준의 30~50%에 해당하여 그 노출수준도 결코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김씨는 사업장에서 약 3년 5개월 근무하는 동안 계속 주 ‧ 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1일 최대 14.5시간의 근무를 지속하였으므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기간이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하기에 지나치게 짧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김씨는 근무 당시 유해화학물질 노출을 차단할 수 있는 개인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아 이를 착용하지 않았으므로 보호구를 착용한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그 노출수준이 높았을 가능성도 있다"며 "측정된 유해화학물질 수치가 노출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유해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사업장에 관하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2012년도 하반기와 2013년도 하반기, 2014년도 상반기, 2015년도 상반기에 각각 실시된 작업환경측정결과, 각 유해화학물질의 측정치는 노출기준 이하로 관리되었다. 시트성형 공정의 경우 알루미늄, 산화규소, 산화마그네슘, 크롬 등이 대부분 노출기준 대비 0.3% 이하로 나타났고, 톨루엔은 2.45% 이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박막실과 가공실의 경우 아세톤과 이소프로필알콜은 노출기준 대비 1/10 이하 수준이었고, 가공실의 금속가공유는 노출기준 대비 1/5 이하 수준이었다.

재판부는 "면역기능 저하는 비호지킨림프종의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는바, 김씨가 주 6일 이상 하루 10.5시간 내외의 근무를 하였다는 점에서 김씨에게 과로가 누적되었다고 보이고, 이러한 과로가 면역기능 저하를 초래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상병이 속하는 비호지킨림프종은 10만명당 9건의 조발생률을 보이는 흔치 않은 질병으로, 비록 상병 진단 당시 김씨가 만 51세로 비호지킨림프종의 발병률이 높은 50대의 연령대에 속하기는 하였으나, 김씨는 상병 진단 전 비호지킨림프종의 주요 위험요인인 자가면역질환이나 각종 바이러스, 제2형 당뇨병, 비만 등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별다른 기초질환이나 치료내역, 비호지킨림프종 관련 가족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김씨는 이 사업장 근무 전에는 학원을 운영하여 화학물질 취급과 관련 없는 업종에 종사하였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