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대리기사가 도로에 두고 간 승용차, 차량 소통 위해 3m 음주운전 무죄
[교통] 대리기사가 도로에 두고 간 승용차, 차량 소통 위해 3m 음주운전 무죄
  • 기사출고 2020.05.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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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긴급피난 해당"

대리기사들이 손님과의 갈등 끝에 운행 중 도로에 차를 세우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가운데, 차량 소통을 위해 짧은 거리를 음주운전한 차주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긴급피난을 인정한 것이다. 이 대리기사는 근처에서 차주의 음주운전을 몰래 지켜보다가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류일건 판사는 3월 23일 대리운전기사가 도로에 두고 간 포르테 승용차를 음주 상태에서 약 3m 운전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을 공시했다(2019고정2908). 류 판사는 특히 이 판결에서 음주운전에 관련된 긴급피난의 요건을 상세하게 밝혔다.

A씨는 2019년 11월 9일 오후 11시 2분쯤 혈중알코올농도 0.097% 상태로 서울 서초구에 있는 도로에서 자신의 포르테 승용차를 약 3m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음주 상태에서 귀가하기 위하여 평소 자주 이용하던 대리운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하였는데, 이 대리운전기사는 잠시 운전하는 도중에 목적지까지의 경로에 대하여 A씨와 이견이 생기자, 갑자기 차를 정차한 후 그대로 내려 이탈했다. 정차 위치는 양방향 교차 통행을 할 수 없는 좁은 폭의 편도 1차로이자 동작대로로 이어지는 길목이어서, 정차가 계속될 경우 A씨의 차량 뒤쪽에서 동작대로로 나아가려는 차량과 A씨의 차량 앞쪽으로 동작대로에서 들어오려는 차량 모두 진로가 막히게 되어, 결국 A씨의 차량이 앞뒤 양쪽에서 교통을 방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로 대리운전기사가 하차 · 이탈한 직후에 A씨의 차량 뒤쪽에서 동작대로로 나아가려는 승용차의 진로가 막히게 되자, A씨는 조수석에서 내려 양해를 구하면서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했다. 하지만 얼마 후 A씨의 차량 앞쪽으로 동작대로에서 들어오려는 택시까지 나타나자 A씨는 진로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대리운전기사가 정차시킨 지점에서 우측 앞으로 약 3m 운전하여 도로의 가장자리 끝 지점에 차를 정차시켜 차량 1대가 통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이에 따라 택시가 먼저 도로로 들어갔고, 이어서 A씨 차량 뒤쪽에 있던 승용차가 동작대로로 나아갈 수 있었다. A씨는 차를 정차시킨 후 곧바로 하차하여 택시와 이 승용차의 통행을 돕다가 인근에서 몰래 A씨의 운전을 관찰하던 대리운전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단속되었다. 경찰이 적발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7%.

류 판사는 "당시 피고인에게는 운전을 부탁할 만한 지인이나 일행은 없었고, 위 승용차와 위 택시의 운전자 또는 주변 행인에게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한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하여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당면한 교통 방해 및 사고 발생 위험이 급박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교통방해와 사고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편도 1차로(이 사건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로 약 3m 가량 차를 이동시켰을 뿐,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당시 피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 차량을 이동한 거리, 이 사건 도로의 형상 및 타차량 통행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발생하는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확보되는 법익이 위 침해되는 법익보다 우월하였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운전한 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어서 형법 22조 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긴급피난 인정되려면…

류 판사는 이에 앞서 대법원 판결(2005도9396 등)을 인용해 "형법 22조 1항의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를 말하고, 여기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첫째,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 둘째,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며, 셋째, 피난행위에 의해 보전되는 이익은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 넷째,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을 요구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혔다.  

류 판사는 "대리운전기사가 하차 · 이탈하거나 경찰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대리운전기사에게 공격적 언행을 한 사정도 엿보이지 아니한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