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산재"
[노동]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산재"
  • 기사출고 2020.05.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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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산재보험법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간호사가 임신 중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에 관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4월 29일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한 A(40)씨 등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6두41071)에서 이같이 판시 A씨 등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신영훈 변호사와 법무법인 여는이 상고심에서 원고 측을 대리했다. 피고 측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리했다.

2009년에 임신했으나 이듬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지닌 아이를 낳은 A씨 등은, 제주의료원이 노사합의로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역학조사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 · 질병 · 장해 · 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2012년 12월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했다.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들 중 2009년에 임신한 사람은 원고들을 포함하여 총 15명이었는데, 그 중 6명만이 정상 아이를 출산하였을 뿐이고, 원고들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은 유산을 했다.

원고들은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구하여, "태아에 심장 형성의 장애가 발생하였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질병으로 보아야 하며, 산재보험법의 적용 여부는 근로자에게 질병이 발병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며, 발병 이후 근로자 지위를 상실하였다고 하여도 계속 산재보험이 적용되므로, 자녀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시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재차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도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사유로 생긴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원고들에게 자녀의 선천성 질병에 대한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없는 이상 그 청구권도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다시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 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지적하고, "산재보험법에는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고 밝혔다.

이어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므로, 장해급여와는 달리 그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하여 반드시 노동능력을 상실할 것을 요건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 "임신한 여성 근로자인 원고들의 업무에 기인하여 각 태아에게 선천성 심장질환이 생겼다면, 이는 산재보험법 5조 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후 원고들의 각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가 분리되어 독립된 인격을 가진 출산아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은 각 출산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에 관한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하여 원고들은 산재보험법상 요양급여 수급권자가 될 수 없으므로 (원고들에 대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