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회식 후 귀가하다가 무단횡단 사망…업무상 재해"
[노동] "회식 후 귀가하다가 무단횡단 사망…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20.04.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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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업주 지배 · 관리 상태에서 발생"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월 26일 회사 행사에 이어진 회식에 참석해 음주 후 귀가 중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여 사망한 A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두35391)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사업주의 지배 · 관리를 받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11월 26일부터 시흥시에 있는 H건설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안전관리과장으로 근무한 A씨는, 2016년 4월 14일 회사 행사인 Mock-up 품평회가 끝난 뒤 이어진 문화행사 및 1 · 2차 회식을 마치고 수인선 월곶역에서 전철에 탑승하여 오후 11시 35분쯤 인천 논현역에서 하차하였다. 이어 버스에 탑승하기 위하여 왕복 11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다가 주행 중이던 차량과 충돌하여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외상성 두부손상'으로 인하여 당일 사망하였다. 이에 A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하였으나, 사업주의 지배 · 관리 하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Mock-up 품평회는 공사를 일부 완료한 상태에서 한 세대를 정하여 인테리어 공사를 포함한 마무리 공사까지 마치고 본사의 건설부문 대표 등 관계자를 불러서 완성된 모습을 시연하는 행사로, 완성될 건물의 안정성과 완성도를 미리 예측하고 향후 공사의 진행 방향과 전략을 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1차 회식에는 아파트 신축공사의 현장직원 23명 전원이 참석했고, 노래방에서 진행된 2차 회식에는 이 공사를 총괄하고 있는 공사부장, 공사과장과 품평회의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한 A씨 등 안전관리팀 5명을 포함하여 총 9명이 참석했다. A씨는 1 · 2차 회식에서 술을 마셨고,  1 · 2차 회식 비용은 모두 H건설의 법인카드로 결제하였다. A씨는 평소 자신의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였는데, H건설은 품평회 등 회사 전체적인 행사가 있는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도록 권고했다. A씨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통상적으로 수인선 월곶역에서 전철을 타고 인천 논현역에서 내린 후 버스정류장까지 도보로 약 5분간 걸어가 버스를 이용하여 귀가했다.

1심 재판부는 "사고 발생에 기여한 A씨의 과실이 있더라도 무과실책임의 특수한 손해배상의 성격을 가진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특성상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의 이유가 될 수 없고, 회식이 회사의 전반적인 지배 · 관리하에서 이루어졌으며, 사고와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A씨의 주취 정도가 불분명하여, 왕복 11차선의 도로를 무단횡단한 것이 회식 과정 또는 그 직후의 퇴근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A씨의 무단횡단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2항 본문의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무단횡단으로 인해 과음과 이 사건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는 사업주인 H건설의 중요한 행사로서 자신이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한 품평회를 마치고 같은 날 사업주가 마련한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퇴근하던 중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이 사고는 사업주의 지배 · 관리를 받는 상태에서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볼 여지가 있다"며 "그런데도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업무상 재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에 앞서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회식 과정에서 근로자가 주량을 초과하여 음주를 한 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 부상 ·  질병 ·  신체장해 또는 사망 등의 재해를 입은 경우 이러한 재해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때 상당인과관계는 사업주가 과음행위를 만류하거나 제지하였는데도 근로자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과음을 한 것인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아니면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