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양돈조합 공장내 육가공 업무 위탁, 근로자파견 아닌 도급 해당"
[노동] "양돈조합 공장내 육가공 업무 위탁, 근로자파견 아닌 도급 해당"
  • 기사출고 2020.03.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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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위탁업체 근로자들에 패소 판결

도급이냐 근로자파견이냐를 놓고 분쟁이 잦은 가운데 둘을 구분하는 상세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 나왔다. 돼지고기의 육가공 업무를 위탁받은 사내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판결인데, 창원지법 민사5부(재판장 최웅영 부장판사)는 2월 20일 신 모씨 등 김해시에 있는 P양돈협동조합의 공장에서 육가공 업무를 해온 T사 소속 근로자 4명이 P조합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2018가합52788)에서 근로자파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 도급이라고 판단,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양 당사자가 항소하지 않아 3월 6일 이대로 판결이 확정됐다.

신씨 등 원고들은 "P조합과 T사가 맺은 계약은 그 명칭이 용역계약 또는 도급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 노동력의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P조합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P조합의 돈육생산 공정 중 도축된 돼지고기 지육(도축 후 껍질을 벗기고 머리, 꼬리 및 사지 끝을 절단하고 내장을 꺼낸 부분)의 발골(지육 또는 부분육에서 뼈를 제거하는 작업), 정선(발골을 마친 정육을 판매사양에 맞게 잘라내는 작업), 포장 등의 육가공 업무를 위탁받은 T사에 고용되어 P조합이 김해시에서 운영하는 육가공 공장에서 육가공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며, 변론종결일 현재 근무기간이 모두 2년이 넘는다. 

재판부는 먼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2조 1항에 의하면,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 · 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며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 · 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 · 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P조합의 T사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 · 명령, ▲T사 근로자들의 P조합의 사업에의 편입, ▲T사의 근로자 관련 결정 권한 행사, ▲T사가 P조합과 맺은 육가공 위탁계약의 목적과 T사 근로자들의 업무 성격, ▲T사의 독립적 조직 · 설비로 나눠 근로자파견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설시했다.   

결론은 원고들을 비롯한 T사 근로자들의 근로관계의 실질이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

재판부는 "피고는 T사의 육가공 업무에 관하여 작업 물량과 방법 등에 관한 내용을 적은 작업지시서나 가공도축 1등급 이상 순번 현황, 가전표 등의 문서를 T사의 반장들을 통해 원고들을 비롯한 근로자들에게 전달하였고, T사의 근로자들은 이에 맞추어 육가공 업무를 수행하였으나, 이를 들어 피고가 T사 근로자들에게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왜냐하면 (P조합과 T사가 맺은) 계약을 도급계약으로 보는 경우, 도급계약에서 수급인이 완성해야 할 일의 내용은 계약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로서 이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매일 수급인에게 전달하여 그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이 때 수급인의 근로자들이 도급인의 요구사항을 이행한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자들에게 직접 지휘 · 명령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장의 육가공 업무는 작업 당일에 도축된 지육에 대하여 육가공 공정을 거쳐 피고의 요구사항에 맞는 포장육을 생산하는 것이므로, 피고에게는 포장육의 구체적인 생산방법보다는 피고의 요구사항에 맞는 포장육이 적시에 생산되었는지 등과 같은 결과물이 더 중요하고, 그렇다면 피고가 작업 물량과 방법(지방의 비율 등)에 관하여 T사 근로자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여 이행하도록 한 것은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일의 완성에 관한 지시로 볼 수 있다"며 "피고가 원고들을 비롯한 T사 근로자들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는 양돈농가로부터 돼지를 공급받아 피고의 공장에서 돼지고기 포장육을 생산하고 있는데, 도축부터 가공(발골 · 정선), 포장, 보관, 출하에 이르는 일관공정을 갖추고 있으므로 T사 근로자들이 담당하는 육가공 업무와 피고의 직원이나 다른 외주업체가 담당하는 도축, 보관, 출하 등의 업무는 피고의 돼지고기 포장육 생산사업을 구성하는 주요 공정이 되는 반면, 공장의 도축, 육가공, 보관, 출하 등의 공정은 서로 그 내용과 범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해당 업무에 요구되는 전문성 · 기술성도 전혀 다르며, 급여의 수준이나 난이도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며 "원고들을 비롯한 T사 근로자들은 피고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컨베이어벨트는 단순한 물건 이동수단 불과"

피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의 이병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 "이 사건에서는 특히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원청과 하도급업체에 의해 수행되는 서로 다른 공정이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여부 및 공장에 설치되어 도급업무에 사용되는 컨베이어벨트가 원청의 작업량, 작업속도 통제수단으로 기능하는지 여부가 핵심적으로 문제되었다"며 "이 사건 공장에서 사용되는 컨베이어벨트의 기능과 작동방식에 비추어 볼 때 컨베이어벨트는 단순한 물건의 이동수단에 불과하지 작업속도 등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도축업체로부터 지육을 받아 육가공업무만을 수행하는 업체들이 많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이 사건 도급업무가 장소적으로만 사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지 독립된 도급업무로서의 실질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며 "최근 법원이 사내하도급 사건에서 도급의 적법성을 부정하고 원청과 하도급업체 사이의 도급계약을 근로자파견으로 넓게 인정하는 추세인데,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수행되는 업무일지라도 적법한 도급이라는 판단을 받아낸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