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자격증 대여받아 문화재수리계약 따냈다고 사기죄 단정 곤란"
[형사] "자격증 대여받아 문화재수리계약 따냈다고 사기죄 단정 곤란"
  • 기사출고 2020.03.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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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계약 체결 경위 등 따져 공사대금 편취 여부 가려야"

문화재수리기술자 · 문화재수리기능자들로부터 자격증을 대여받아 문화재수리계약을 따냈다고 무조건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계약 체결 경위 등 따져 공사대금 편취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월 6일 문화재수리기술자 등으로부터 자격증을 대여받아 종합문화재수리업자로 등록한 뒤 64건의 문화재수리계약을 따냈다가 특경가법상 사기, 위계공무집행방해, 문화재보호법 위반, 문화재수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종합문화재수리업체인 S건설사 대표 안 모씨에 대한 상고심(2015도9130)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기 혐의는 무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신대희 변호사가 안씨와 S사를 변호했다.

안씨는 문화재수리기술자인 손 모씨와 공모하여 문화재수리기술자 및 기능자들의 자격증을 S사 명의로 대여받아 S사를 종합문화재수리업자로 등록한 뒤, 2009년 6월 18일경 보은군과 '추양정사영정 보호각 정비사업'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을 비롯하여 2013년 11월 11일경까지 64회에 걸쳐 보은군 등과 문화재수리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대금으로 58억여원을 지급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안씨는 손씨에게 S사가 도급받은 문화재수리공사를 시행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수리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다른 문화재수리기술자 · 문화재수리기능자의 자격증을 대여받아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종합문화재수리업자로 등록하려면 상시 근로하는 문화재수리기술자 4명, 문화재수리기능자 6명 이상을 보유하여야 한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사기 등 안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자 안씨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문화재보호법 위반죄 또는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문화재수리법) 위반죄는 문화재수리의 품질향상과 문화재수리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국가적 또는 공공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이므로, 이러한 범죄가 행해졌다 하여 언제나 사기죄의 보호법익인 재산권이 침해되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며 "이들 죄와는 별도로 사기죄가 성립되었다고 하려면 이러한 사정에 더하여 문화재수리에 관한 공사도급계약의 내용과 그 체결 경위, 계약의 이행과정이나 그 결과 등까지 종합하여 살펴볼 때 과연 위 피고인들이 공사도급계약을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도급을 가장하여 공사대금을 편취하려 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심과 원심이 피고인 안씨와 손씨에 대하여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한 근거를 살펴보면, 첫째는 문화재보호법 등을 위반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실제로는 손씨로 하여금 S사가 도급받는 문화재수리공사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는데도 S사가 문화재수리공사를 직접 시행할 것처럼 속여서 공사를 도급받았다는 것인데, 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의하더라도, 손씨는 S사에 소속된 문화재수리기술자라는 것이므로, 이를 S사의 공사로 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문화재수리기술자 등의 자격증을 대여받아 사용한 행위가 곧바로 사기죄에서의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안씨와 함께 기소된 손씨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문화재수리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하여 곧바로 그 공사대금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고, 그 공사를 발주한 지방자치단체 등이 공사가 그 계약 내용에 따라 이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공사대금을 지급한다는 것인데, 문화재수리공사가 계약에서 정한 내용과 기한에 맞추어 진행되지 않았다거나 그 완성된 공사에 별다른 하자나 문제점 등이 발견되었다는 등의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며 "피고인 안씨가 공사대금을 편취할 의사로 문화재수리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단정한 원심에는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사기 혐의는 무죄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만 안씨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와 문화재보호법 · 문화재수리법 위반 혐의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안씨의 문화재보호법 · 문화재수리법 위반 혐의와 관련,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S사는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됐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