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북경통신] 궈빙사건-중국 안면인식 1호 사건
[김종길의 북경통신] 궈빙사건-중국 안면인식 1호 사건
  • 기사출고 2020.01.3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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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연간회원카드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어 기존의 지문인식 방식은 취소되었습니다. 앞으로 안면인식등록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입장하실 수 없으니, 빠른 시간내에 센터로 와서 안면인식을 등록해주십시오."

'안면인식등록 안 하면 입장불가' 통보

항저우야생동물세계라는 이름의 동물원으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은 연간회원 중 한 명인 궈빙(郭兵)은 저장대학에서 법률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인데, 동물원이 고객에게 이런 방식으로 안면인식을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겼다. 궈빙은 2019년 4월 27일 이 동물원으로부터 연간회원카드를 1360위안(한화 약 21만원)에 구입했다. 유효기간은 1년, 2019년 4월 27일부터 2020년 4월 26일까지였다. 1년간 입장횟수에 제한이 없으며, 입장방식은 카드를 제시하고 지문확인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9년 10월 17일 동물원
이 일방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앞으로 안면인식으로 신원확인을 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통보한 것이다. 궈빙은 동물원측을 찾아가 부당하다고 항의했지만, 동물원측으로부터 안면인식등록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렇다면 환불해달라는 요청에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종길 변호사
◇김종길 변호사

그는 2019년 10월 28일 항저우시푸양구인민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궈빙은 소비자보호법 제29조의 "경영자가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수집, 사용하는 경우 반드시 합법성, 필요성, 정당성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하며, 신용정보 수집, 사용의 목적, 방식과 범위를 명시하고, 소비자의 동의를 거쳐야한다"는 규정을 들어, 고객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 수집을 강제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점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법원에선 11월 1일 이를 수리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한국의 경우 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법원이 즉시 접수하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법원이 소장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심사한 후에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법원이 소장을 수리하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이 사건을 중국 안면인식 1호 사건이라고 부르며 소송의 향후 진행에 관심을 나타냈고, 인터넷에서는 안면인식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다.

소장 수리 자체로 상당한 의미

중국은 안면인식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SenseTime(商湯科技), MEGVII(曠視科技), CloudWalk(雲從科技), Yitu(依圖科技)등 세계적인 안면인식기술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실시한 글로벌 안면인식 공급업체 정확도 테스트(FRVT)에서 1, 2위를 Yitu의 알고리즘이, 3, 4위를 SenseTime의 알고리즘이, 선전기술연구원(SIAT)의 알고리즘이 5위를, MEGVII의 알고리즘이 8위를 차지하여 중국기업이 상위권을 휩쓴 바 있다.

그리고 중국내에서 안면인식기술은 적용범위를 날로 넓혀 출입, 보안, 금융, 결제, 공공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중국을 가본 사람이라면 공항 입국에서 호텔 체크인까지 모두 안면인식으로 신원확인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안면인식 분야의 시장규모는 2019년 34.5억 위안(한화 약 5500억원)인데, 향후 5년간 매년 20%씩 성장하여 2024년에는 100억 위안(한화 1조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에서 예측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법적 규제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로 인하여 작년 하반기부터 안면인식기술의 무분별한 적용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었다.

안면인식기술로 홍콩 시위자 색출

우선 작년 하반기 홍콩 경찰이 중국 공안의 안면인식기술로 홍콩 시위자들을 색출해내자 홍콩 시위자들은 마스크를 써서 대응했고, 이에 대하여 홍콩 정부는 복면금지법을 만들어 마스크 착용을 금지시켰으나 복면금지법은 그 후 홍콩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다.

다음으로, 2019년 8월 30일 간편하고 재미있게 핸드폰에서 얼굴을 바꿀 수 있는 딥페이크(얼굴 변환) 앱인 Zao가 등장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다음날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무료앱 중 2위를 차지했다. 이후 위챗, 웨이신 등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다만, 약관에 유저가 올린 얼굴사진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귀하가 앱을 사용하여 얼굴을 바꾸는 것은 귀하와 초상권리자가 Zao 및 그 관련회사에 전 세계 범위에서 완전히 면책되고, 취소불가능하고, 영구적이며, 양도 가능하고, 라이선스 가능한 권리를 부여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얼굴사진, 동영상 자료 및 초상 자료에 포함된 귀하와 초상권리자의 초상권 그리고 기술을 이용하여 귀하 또는 초상권리자의 초상에 대하여 수정하는 것을 포함하나 이에 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로 인하여 인터넷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정부 당국의 간여하에 이틀도 지나지 않아 앱을 내리게 되었다.

2019년 10월 29, 30일 이틀간 열린 '2019년 도시궤도교통 운영발전포럼'에서 베이징지하철과 베이징시궤교교통지휘센터의 책임자는 향후 베이징에서 안면인식기술로 승객을 분류하여 안전검사를 통과시키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칭화대학 법학과 교수인 라오동얜(勞東燕)은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의 얼굴은 중요한 개인의 생물 데이터이므로 관련기구와 조직에서 수집하는 데에는 합법성을 증명해야 한다. 둘째, 이런 기술을 추진하는 데에는 반드시 공중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셋째, 분류기준의 합리성과 합법성에 의문이 있다. 넷째, 안면인식기술의 효율성이 높은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안면인식기술 관련 논쟁 촉발 의미

궈빙사건 자체는 소가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물원측이 소비자보호법상 소비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였으므로, 아마도 법원이 연간회비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이 사건은 중국의 법조계에서 첨단기술, 그중에서도 특히 안면인식기술에 관련된 법적 논쟁을 촉발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

현재 중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면인식기술과 관련한 법적 논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업무효율을 제고하기 위하여 안면인식기술로 검표하는 것의 법률적 근거는 충분한가?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지는 않는가? 둘째, 강제적으로 개인의 얼굴 모습 혹은 동영상 등 개인정보를 채집하는 것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셋째, 개인의 얼굴 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이며, 어떤 요건하에서 수집할 수 있는가? 넷째, 만일 수집한 개인정보의 누설 등 정보 주체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정보수집자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 그리고 법적 구제절차는 어떻게 되는가? 다섯째,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어떤 원칙을 따라야 하고, 어떤 의무를 부담하는가 등등이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