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연이어 대법원서 승소한 '노동 전문' 정희선 변호사
[리걸타임즈 이달의 변호사] 연이어 대법원서 승소한 '노동 전문' 정희선 변호사
  • 기사출고 2019.10.1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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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건엔 인생 담겨 있어…항상 겸손하게 하려고 다짐"

"법리도 법리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 승기를 잡은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발품 좀 팔았죠."

일명 '버스기사 대기시간' 사건으로 알려진 KTX 광명역과 사당역을 오가는 셔틀버스 회사 사장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2018도16228)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정희선 변호사는 근로자의 고소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2년이 더 걸린 이 사건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시작했다.

◇정희선 변호사
◇정희선 변호사

변호사 경력 11년의 여성 노동변호사

2006년 제4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변호사 경력 11년차의 노동법 변호사로, 사법연수원을 마친 2009년부터 노동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아이앤에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성 노동변호사의 치밀함과 함께 자신이 맡은 사건에 관한 한 쉽게 포기할 줄 모르는 강단이 돋보인다는 것이 그녀를 아는 여러 사람의 평가. 갈수록 중견 변호사의 원숙한 기량이 돋보이는 그녀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포함해 최근 두 건의 커다란 대법원 사건에서 승소했다.

버스기사 대기시간 사건은 내용이나 관련 법규는 비교적 간단, 명료한 사건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어 1주에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면 처벌대상이 되는데, 정 변호사가 변호한 코레일네트웍스의 대표이사가 소속 근로자인 셔틀버스 기사로 하여금 주당 59.5시간 즉, 7시간 반을 더 근무하게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안이다.

다만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코레일네트웍스가 버스기사들의 근무 특성을 감안해 운전근로자들과 합의해 격일 단위로 평균 총 근무시간 19시간 중 휴게시간 2시간을 제외하고 대기시간을 포함한 17시간을 기준으로 시급 8000원을 적용해 임금을 지급해 왔는데, 이점이 보통의 초과근로 사건과는 다른 새로운 쟁점이었다. 검사도 이같이 합의한 근로시간에 대한 다툼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결국 피의자를 고소한 근로자는 주당 59.5시간(17시간×3.5일)을 근로하였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당 52시간에서 7시간 반을 초과한다며 공소를 제기했다.

주당 59.5시간 어치 임금 지급 합의

정 변호사는 그러나 이러한 노사 합의를 떠나 피고인 회사의 운전근로자들, 회사 측을 고소한 근로자의 실 근로시간을 파고들었다. 대법원이 이미 1992년에 선고된 판결에서 "근로시간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받으면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을 말하는데, 근로기준법 50조와 53조의 규정은 근로자들의 과중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자 하는 규정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근로시간은 실근로시간을 의미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어 궁극적으로는 실근로시간의 산정이 유무죄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이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받는 시간을 의미해요. 반대로 근로시간으로 보지 않으려면 근로자들이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으로 이용했어야 해 의뢰인 회사의 현장 담당자 등을 상대로 열심히 팩트 파인딩에 나섰어요."

정 변호사는 광명역과 사당역을 하루 13~14차례 왕복 운행하는 셔틀버스의 특성을 감안해 광명역에서의 대기시간을 조사하고, 광명역에 마련된 휴게실의 사진도 찍어 재판부에 제출했다. 또 회사 측의 도움을 받아 동료 근로자를 전화인터뷰해 진술서를 마련하는 등 피고인 회사 버스기사들의 정확한 근로실태 파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정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근로자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아서 그런지 사용자 측 변호사인데도 근로자들이 협조해주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특히 30분이 안 되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라 순수한 대기시간이나 휴식시간이라고 주장하기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30분 넘게 대기한 시간만 대기 당시의 상황을 조사해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30분 초과 여부를 기준으로 한 이러한 접근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대법원은 "(광명역에서 대기하는) 최소한 30분을 초과하는 휴식시간인 6시간 25분은 근로시간이 아니라 휴게시간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판결문에 명시하는 등 30분 초과 휴게시간에 대해서만 근로시간 여부를 판단했다.

'30분 초과 기준', 대법도 그대로 인용

1심에선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선 벌금 50만원의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특히 노사간 합의를 통해 주당 59.5시간 일한 것으로 보아 임금을 받은 것과 관련, 정 변호사 팀에선 "그것은 근로자들을 후하게 대우하기 위해 그렇게 정한 것으로 실근로시간은 별개로 따져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검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 변호사는 "패소 판결을 받으면 의뢰인이 변호인을 교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상고심도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며 "끝까지 변호인을 믿고 따라준 의뢰인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변호사는 지난 7월 25일 대법원에서 상세한 이유 설명이 들어 있는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무죄라는 판결 결과도 피고인이 기대하던 내용이지만, 우리가 꼼꼼하게 조사해 주장한 내용을 토대로 대법원이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을 구별해 주당 52시간 초과근로 여부를 판단한 것을 보니 우리의 변론전략이 옳았던 것 같아요. 사실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정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을 구별하는 일종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현재 사업장에서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주 52시간 근로제에서의 근로시간 산정이나 당직비 대신 야간근로, 연장근로 수당 등을 달라고 청구한 전공의 소송 등에도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복지포인트 소송'도 승소

셔틀버스 기사의 출발지에서의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지 한 달쯤 지난 8월 22일, 정희선 변호사는 이번엔 서울의료원을 대리해 서울의료원에서 근로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포인트는 임금이 아니라는, 그래서 통상임금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6다48785)을 받았다. 물론 정 변호사가 대리한 피고 측의 승소 판결로, 1, 2심에선 졌으나 대법원 상고심에서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힌, 정 변호사에겐 더욱 값진 승리였다.

◇정희선 변호사가 리걸타임즈와 인터뷰를 갖고 '버스기사 대기시간' 사건의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희선 변호사가 리걸타임즈와 인터뷰를 갖고 '버스기사 대기시간' 사건의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쟁점은 복지포인트를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볼 수 있느냐 여부. 정 변호사팀에선 '근로자가 퇴사 또는 사망하더라도 근로한 기간을 따져 그동안의 임금은 지급하지만 복지포인트는 그대로 소멸하고, 통상 1년 내 사용되지 않을 경우 소멸하는 등 임금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는 등 복지포인트를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다양한 논거를 제시했고, 정 변호사팀의 이러한 주장은 대법원 판결에 대부분 그대로 반영됐다.

10년 넘게 노동법을 다루고 있는 정 변호사가 보기에 노동사건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정 변호사는 망설이지 않고 "해고사건이든 임금사건이든 노동사건엔 근로를 하면서 발생했던 모든 일이 들어가게 된다"며 "근로자의 수십년 인생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답했다. 그래서 사용자를 대리하든 근로자를 대리하든 노동 사건은 힘든 점도 있지만 배우는 것이 많고 한 사건 한 사건이 다 중요하다는 것이 정 변호사의 지론. 정 변호사는 "노동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사건이기 때문에 로펌의 변호사로서 사용자 쪽을 대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항상 겸손하게 하려고 한다"며 "노동법 법리를 주장하더라도 너무 자극적으로 하지 않고 팩트 파인딩과 증거 위주로, 기도하는 심정으로 사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 정희선 변호사가 높은 승소율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