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약물 과민반응 체질 간과한 채 주사제 처방해 환자 사망…병원 책임 85%"
[의료] "약물 과민반응 체질 간과한 채 주사제 처방해 환자 사망…병원 책임 85%"
  • 기사출고 2019.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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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법] '시스템 미비' 병원 경영진 과실도 인정

의사가 환자의 약물 과민반응 체질을 간과하고 주사제를 처방하여 환자가 숨진 사건에서, 법원이 진료의사 뿐 아니라 처방한 약물의 부작용을 설명해주는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병원 경영진에게도 과실이 있다며 병원에 85%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청주지법 민사12부(재판장 오기두 부장판사)는 8월 19일 과민성 쇼크로 숨진 A(사망 당시 53세)씨의 아들이 손해를 배상하라며 충북 보은군에 있는 B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2017가합202415)에서 피고의 책임을 85% 인정, "피고는 원고에게 2억 3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6년 11월 15일경 오른쪽 발목을 다친 A씨는 다음날 오후 1시 30분 무렵 충북 보은군에 있는 B병원을 찾아 이 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C씨로부터 엑스레이 촬영 등 검사를 받은 다음 오른쪽 발목 부위 인대손상으로 진단받고, 같은날 오후 2시 26분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의 일종인 '디클로페낙(dichlofenac)' 성분의 주사제 '로페낙-주 2ml'와 먹는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A씨는 2009년 무렵 대전성모병원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일종인 심근경색 진단을 받아 스탠트(혈관을 확장하는 구조물) 시술을 받은 후 심근경색치료제를 장기간 복용하고 있었고, 또 예전에 한 내과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로부터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 약물에 대하여 몸에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들음과 함께 항상 주의하라며 손글씨로 'dichlofenac(디클로페낙)'이라고 적힌 쪽지를 받아서 평소에 이를 가지고 다녔다.

C의 처방에 따라 간호사는 A에게 '유니페낙' 2cc를 근육주사했는데, C씨가 A에게 처방한 로페낙과 간호사가 실제로 A에게 주사한 유니페낙은 모두 디클로페낙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 주사제로 성분은 동일하고 제품명만 다르다. A는 주사를 맞은 후 처방약을 조제하려고 병원 가까이에 있는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dichlofenac(디클로페낙)'이라고 적힌 쪽지를 보여주면서 처방전에 있는 약과 쪽지에 적힌 약의 성분이 같은지를 묻고, 약사가 성분이 거의 비슷하다고 하자, "나는 이 약을 먹으면 큰 일 난다"고 말하면서 동행했던 동거인과 함께 처방전 변경을 위해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A씨는 오른쪽 발목을 다친 상태여서 걸음이 느렸다. 동거인이 먼저 병원으로 돌아가 C에게 A씨의 디클로페낙 부작용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사이에, A씨는 동거인에게 전화하여 '주사에도 그 약이 있었나보다. 지금 신호가 온다'고 말하고, 같은날 오후 2시 36분 무렵 이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A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전신경직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디클로페낙 과민반응에 대한 약물 투여와 석션카테터, 기관내삽관술, 심폐소생술 제세동술과 전기적 심조율전환, 산소흡입 등의 처치를 받았으나, 같은날 오후 4시 11분 무렵 심근 경색과 과민성 쇼크 의증으로 사망했다. A에 대한 부검 결과 사인은 디클로페낙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쇼크(과민성 쇼크)로 추정되었다. 이에 A씨의 유일한 상속인인 아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C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C씨가 2018년 11월 사망해 공소기각결정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특정 약제를 주사 받거나 복용한 환자가 체질에 따라서는 부작용으로 인하여 약제 사용으로 인한 치료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심각한 신체기능의 장애를 입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될 우려가 있다는 사정이 의학계에 알려져 있다면, 해당 약제를 처방하여 주사하게 하거나 복용하게 하는 의사로서는 환자의 과거병력과 과거 의약품의 사용내역, 의약품 사용에 따라 겪게 된 증세 등에 관해 문진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상세히 조사한 후 해당 약제를 처방하여 주사하거나 복용케 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진단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해당 약제를 주사하거나 처방하는 행위를 삼가야 하고, 나아가 의사로서는 해당 약제를 처방하거나 주사하게 하기 전에 환자에게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를 부작용에 관하여 미리 대비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하고, 해당 약제를 주사하거나 복용하도록 한 후에는 사후 관찰을 하고 의학적으로 기대되는 적절한 사후치료를 다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으며, 해당 약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통상적인 약제라거나 환자의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매우 드물다는 사정만으로 그와 같은 주의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의사에게는 이와 같은 주의의무 이행으로 특히 환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를 예견하고 회피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의사 C씨는 A씨의 과거병력과 투약력을 문진이나 기타 방법으로 파악하지 않은 채 만연히 디클로페낙 성분의 '로페낙-주 2ml'를 근육주사하도록 처방하는 잘못을 저질러 오후 2시 26분쯤 디클로페낙 성분의 유니페낙 주사를 맞은 A씨로 하여금 병원 응급실에 있다가 약 1시간 40분 만인 오후 4시 11분쯤 사망하게 하는 중대한 결과를 발생케 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C씨는 자신의 잘못된 주사약 처방으로 인해 A씨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를 예견하고 이를 회피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고, 피고는 사용자로서 A에게 C씨의 과실에 의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C씨의 설명의무 위반과 관련, "의사 C씨가 디클로페낙 성분의 주사제 처방 전에 A씨나 보호자에게 투여하는 주사제로 인한 부작용과 합병증, 다른 치료 방법과 치료하지 않을 경우의 예후 등에 대한 설명을 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피고는 C씨의 사용자로서 그러한 설명의무를 위반한 C씨의 주사제 처방으로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울러 병원 경영진의 주의의무 위반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C씨의 소속 병원 경영진으로서도 적절하게 병원 운영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내원한 환자에게 정형화된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거나 처방한 약물의 부작용을 환자에게 설명해주는 문서를 비치, 작성하여 교부하거나, 간호사 등 병원 소속 직원들로 하여금 환자의 과거병력이나 약물사용 내역 등을 물어 이를 진료의사나 주사처치 간호사에게 전달하게 하는 등으로 진료와 주사처치 시스템을 운영하였어야 한다"며 "피고는 병원 경영진이 이와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여 A씨에게 입힌 손해를 사용자로서 배상할 책임도 져야 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유니페낙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고, 동일한 효과의 다른 약제와 유사한 안전성을 지닌다고 평가되며 대부분의 부작용은 약물의 중단과 적절한 치료로 회복 가능한 수준인 반면, 아나필락시스 쇼크에 의한 사망사고는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A씨는 자신이 주의하여야 할 약물 이름이 적힌 쪽지를 평소 가지고 다녔고 (C씨의) 진료시에도 이 쪽지를 지갑에 넣어 소지하고 있었으며 이 사건 발생 이전에도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디클로페낙 성분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는 등 자신의 디클로페낙 과민 체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으므로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의사 C씨에게 자신의 질병, 증세, 병력, 체질 등 당해 진료에 필요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고지할 필요도 있었다고 보인다"며 피고의 책임을 85%로 제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