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대학 시절 형사소송법 시간. 고(故) 강구진 교수님이 강단에 서시자마자 대뜸 "진리탐구의 방법이 뭐야?"라고 물으셨다. 진실발견의 방법이 아니라 진리탐구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바람에 학생들이 멈칫하는 순간 선생님께서 특유의 힘찬 필체로 칠판에 "當事者主義"라고 판서하시고 강의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민사재판에서의 사실관계 규명에 관한 얘기다. 리걸타임즈 이번호엔 유독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 관한 글이 많다. 변론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의 민사재판에선 당사자에게 주장 · 입증책임이 있고, 일방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제출하여야 하지만, 미국에선 디스커버리 절차에 따라 상대방에게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어 입증의 부담이 훨씬 덜 하다고 한다.
서울고법의 김형두 부장판사가 최근 한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 잔잔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는 특히 로스쿨의 도입으로 디스커버리 실무에 투입할 인적 인프라도 갖추어져 있다며 새로운 법조인 양성체제와 연결시켜 논의를 전개, 한층 고무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로스쿨 제도와 연계시키는 의견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로스쿨이 도입되고 얼마 안 지난 2010년 한 원로 민사소송법 학자는 "2012년부터 로스쿨 졸업자가 나오면 변호사의 공급이 늘어날 것이고, 변호사 보수가 떨어져서 변호사의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며 "이것이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 · 적응에 낙관적인 인프라가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라는 유력한 주장을 제기했고, 그의 주장은 적중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형두 판사의 제안은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으로 변론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증거조사를 철저히 해 1심 재판의 충실화를 기하고, 그러면 항소심, 상고심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민사재판의 심급제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하지만 로스쿨 제도와 연결시킨 것이 탁견이다.
2012년부터 변호사시험이 실시되며 한 해에 약 1500명씩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그동안 변호사의 공급에만 주목했지 이들 변호사들이 활동할 수요 측면엔 특별히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 등 구조적인 손질이 필요하고, 그것이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변호사의 수요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김 판사의 제안과 같은 변호사시장의 수요확대 논의를 환영한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