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전세버스 기사의 대기시간, 온전한 휴식시간 아니야"
[노동] "전세버스 기사의 대기시간, 온전한 휴식시간 아니야"
  • 기사출고 2019.05.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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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대기시간 포함 1주 70시간 근무후 숨진 버스기사에 산재 판결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대기시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기시간을 포함해 1주일간 70시간이 넘게 일하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전세버스 기사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버스기사의 대기시간이 전부 온전한 휴식시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4월 11일 강원 횡성군에 있는 H관광에서 전세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다가 숨진 김 모(사망 당시 61세)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두40515)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조율이 원고 측을 대리했다.

김씨는 2015년 10월 4일 배차 받은 버스에 주유하고 세차를 하다가 오전 8시 30분쯤 쓰려져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다. 이에 김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김씨가 (사망 전날까지) 19일간 휴무 없이 근무하기는 하였으나, 장시간 대기시간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김씨가 과중한 업무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김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주자 김씨의 배우자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따르면, 김씨는 2015년 6월경부터 8월 초순경까지 메르스 질병으로 행락객이 급감하여 버스 운전업무를 하지 못하다가 메르스 질병 확산이 줄어든 2015년 8월 중순경부터 다시 버스 운전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체험학습, 관광 등의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9월 15일부터 사망 전날인 10월 3일까지 19일 동안 휴무 없이 계속 전세버스를 운전했다. 쟁점은 대기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김씨는 대기시간을 포함해 사망 전 4주간 주당 평균 47시간 7분을 근무하고, 사망 전 1주일인 72시간을 근무했다. 그러나 대기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운전업무시간은 사망 2주 전부터 그전 1주일간은 23시간 31분, 사망 1주 전부터 그전 1주일간은 30시간 38분, 사망 전날부터 그전 1주일간은 38시간 25분으로 근무시간이 줄어든다.

김씨는 전세버스를 운전하였던 관계로 외부관광지 등 일정하지 않은 곳에서 대기했고, 대기한 장소에는 휴게실 등의 휴게공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차량 또는 주차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김씨는 사망 전날인 10월 3일 오전 10시 15분쯤부터 사망 당일인 4일 오전 1시 30분쯤까지는 기존에 해오던 전세버스 운전업무가 아닌 셔틀버스 운전업무를 했다. 이 셔틀버스 운행구간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커브 구간이 있는 산지에 위치해 있고, 김씨는 이 구간을 반복하여 왕복하였으며, 차량 소재지에서 셔틀버스 운행장소로의 왕복 이동시간을 포함하여 15시간 15분 동안 버스를 운전했다. 김씨는 10월 4일 오전 1시 30분쯤 셔틀버스 운행을 마치고 곧바로 이 셔틀버스를 운전하여 집 앞에 도착하여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다가 다시 이 버스를 몰고 오전 8시쯤 출근하여 버스에 주유하고 세차를 하던 중 오전 8시 30분쯤 쓰러져 약 1시간 뒤인 오전 9시 28분쯤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숨졌다.

대법원은 "버스 운전기사는 승객들의 안전과 교통사고의 방지를 위하여 긴장하고 집중하여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정신적 ·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김씨는 전세버스 수요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사망 전날까지 19일 동안 휴무 없이 계속 근무하였고, 사망 전날부터 1주일간은 사망 전 4주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인 47시간 7분을 크게 상회하는 72시간이나 근무하는 등으로 업무상 부담이 단기간에 급증함으로써 육체적 · 정신적 피로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김씨의 근무시간에 대기시간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휴게실이 아닌 차량 또는 주차장에서 대기하여야 하고, 승객들의 일정을 따르다보니 대기시간도 규칙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시간 전부가 온전한 휴식시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김씨는 사망 전날 전세버스 운전이 아닌 셔틀버스 운전 업무를 하였는데, 양 업무는 운행 주기, 운행구간, 승객의 승 · 하차 빈도 등에 큰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라 김씨가 야간근무 3시간 30분을 포함하여 15시간 넘게 운전을 하였고, 사망 당일 오전 1시 30분쯤 귀가한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오전 8시쯤에 출근하여 버스를 세차하던 중 쓰러져 오전 9시 28분쯤 사망에 이른 일련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김씨의 업무내용이나 업무강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발병 당시에 업무로 인한 피로가 급격하게 누적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며 "김씨가 수행한 운전 업무 이외에 달리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도 없으므로, 김씨의 나이(61세), 흡연습관 등 김씨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다른 위험인자를 고려하더라도 이와 같은 운전업무로 단기간에 가중된 과로와 스트레스가 김씨의 급성심근경색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원심이 김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