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처음 사모펀드제도가 도입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공모펀드에 비해서 일부 자산운용 및 공시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형태로 사모펀드에 관한 특례규정을 둔 것이 국내 사모펀드 제도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4년 해외 PEF의 국내 기업 인수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모투자전문회사'라는 명칭(현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으로 처음 PEF가 도입되고, 2009년 해외 헤지펀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헤지펀드를 육성하기 위하여 적격투자자 사모펀드(현재 전문투자형 사모펀드)가 도입되면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사모펀드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졌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300조원 규모
이러한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국내 사모펀드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시장규모는 각각 60조원과 300조원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그런가 하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최강자인 MBK파트너스가 아시아 PEF운용사 중 1위(전 세계 26위)를 기록하는 등 일부 운용사는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하는 수준이 되었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시장규모는 공모펀드 시장규모를 100조원 가까이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사모펀드제도는 국내에 도입된 각종 금융제도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에 더하여 금융당국은 사모펀드시장을 한층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난 9월 27일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을 발표하였다. 금융당국은 이미 작년 12월 14일에 발표한 「신뢰받고 역동적인 자산운용시장 발전 방안」과 올해 1월 11일에 발표한 「자본시장 혁신을 위한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을 통하여 사모펀드제도의 개편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은 기존에 발표된 개편방안에서 언급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사모펀드시장에 놀라움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용규제 일원화는 기존 사모펀드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모펀드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27일 개편방향 발표
현행 자본시장법은 사모펀드를 운용방식에 따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구분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영권 참여 목적(Buy-out)으로 재산을 운용하는 사모펀드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로 하고,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를 제외한 사모펀드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소수지분이나 채권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뿐만 아니라, 부동산, 인프라자산, 금전대여 등에 대해 재산을 운용하는 사모펀드도 모두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사이에는 진입장벽을 두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부동산이나 금전대여 등에 대해 재산을 운용할 수 없도록 하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역시 경영권 참여 목적으로 재산을 운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와 같이 운용대상에 따라 사모펀드를 법적으로 구분하고 사모펀드 유형 간에 진입장벽을 두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에서도 사모펀드를 PEF, Venture Fund, Vulture Fund, Private Debt Fund, Hedge Fund 등으로 구분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사모펀드의 주된 운용전략에 따른 경제적인 구분일 뿐 법적인 구분이 아니고 펀드 유형 간에 진입장벽도 없다.
사실 국내에서 이러한 방식의 사모펀드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다분히 론스타의 힘이 컸다. IMF 상황에서 해외 PEF의 막강한 힘을 절감한 우리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제도 전체를 도입하는 대신 PEF 제도를 먼저 도입하면서, PEF가 나머지 사모펀드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영역이 된 것이다. 당시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제도적 · 형식적 완결성보다 해외 PEF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켜낼 대항마를 시급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판단은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 대신 PEF 먼저 도입
다만 이러한 도입방식으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간에 진입장벽이 생기면서, 국내 사모펀드시장이 다소 기형적인 형태로 성장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의 사모펀드시장이 더욱 고착화되기 전에 사모펀드제도를 통합하고 운용방식을 일원화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하지만 이번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의 백미는 역시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모펀드제도는 감독당국의 개입 최소화와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이라는 모순되는 두 가지 가치가 항상 충돌한다는 특징이 있다.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사적 계약관계를 바탕으로 투자를 받아 운용수익을 배분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핵심적인 특징이므로 감독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지만, 감독당국의 개입 최소화가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투자자 보호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택 따라 전환 용이
그런데 이른바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만으로 구성되는 기관전용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투자자에 제한이 없어 개인도 투자할 수 있는 '일반 사모펀드'에 대해서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감독당국이 개입하겠다는 것이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도입 취지이다. 거기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른 PEF운용사는 그 선택에 따라 일반 사모펀드 운용사나 기관전용 사모펀드 운용사 중 어느 하나로 전환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모펀드제도 통합에 따른 혼란과 충격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게 하였다.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여러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이룰 수 있게 하는 금융당국의 묘수가 아닌가 한다.
한편 사모펀드를 통한 지배력 확장 방지제도를 유지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처음 PEF제도를 도입했던 2004년 당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대규모기업집단이 PEF를 통하여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직접적인 지분투자를 통하여 계열회사를 확대할 경우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상 제한이나 비판적인 여론을 피하기 위하여, 대규모기업집단이 PEF에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PEF운용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실상 PEF의 투자대상기업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PEF가 경영권 참여 목적으로 재산을 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입법과정에서 PEF의 투자자가 운용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조항이 반영되었다. 이번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 역시 이러한 사모펀드를 통한 지배력 확장 방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였는데, 금융당국의 세심한 고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투자자 50인 안 되면 사모
이번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을 통하여 사모펀드의 범위도 다소 조정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증권신고서제도에서 말하는 '공모'와 '사모'의 구분에 따라 50인을 기준으로, 투자자가 49인 이하인 펀드를 사모펀드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EU의 경우 적격투자자(Qualified Investor)로만 구성되는 사모펀드에는 투자자 제한이 없고 미국의 경우 공인투자자(Accredited Investor)가 참여하는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100인 이내로 제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사모펀드의 투자자를 49인으로 제한하는 것은 다소 적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이번에 사모펀드의 투자자를 100인 이내로 확대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조치라고 하겠다.
2004년에 PEF 제도를 도입하면서 금융당국은 (1)사모펀드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감독, (2)자율성의 일부 확대, (3)전반적인 자율성 인정의 3단계를 통하여 사모펀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계획에 비추어보면 이번 「사모펀드 체계 개편방향」은 본격적인 3단계 진입의 신호가 아닌가 한다. 아직 제도개편방향이 발표된 것뿐이고 앞으로 법안의 마련, 국회 통과 등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사모펀드시장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 역시 무척 기대가 크다. 우리 사모펀드시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해서, KKR이나 Blackstone과 같은 글로벌 운용사와 겨루는 한국계 운용사가 탄생하기를 꿈꾸어 본다.
채희석 변호사(hschai@jipyong.com, 법무법인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