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창립 30주년,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기념사 전문
헌재 창립 30주년,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기념사 전문
  • 기사출고 2018.09.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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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과 사랑에 바탕 둔 정의 추구해야"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힘을 모아 헌법재판소의 지난 30년을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결실인 1987년 헌법의 옥동자로 탄생한 헌법재판소는, 바로 그 헌법에 적힌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법치주의 원리를, 살아서 움직이는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이 곳을 찾으신 국민과 재판소 구성원들의 노력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재판소의 결정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약 34,000건을 심리하였고, 그 중 1,600건 가량을 위헌으로 결정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국민과 공무원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 헌신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빛나는 역사는, 이러한 열정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1988년 9월 1일 창립 이래,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서기까지,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과 재판소 구성원에게, 이 뜻 깊은 날을 맞아,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8월 31일 헌재 창립 30주년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8월 31일 헌재 창립 30주년 기념사를 하고 있다.

백창우 시인은 '나이 서른에 우린'의 첫머리에서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된 헌법재판소가, 30년 전에 꾸었던 높은 꿈을, 지금 얼마만큼 실현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30년 후에는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요? 저도 자못 궁금합니다. 우리의 꿈은 인간 존중이라는 헌법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도록, 새로운 30년은 국민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탑을 쌓느라고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있지만, 한 번이라도 공들이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공든 탑도 단번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년의 빛나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겠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본연의 업무에 더욱 내실을 기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서도 결과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성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우리 재판소의 결정은, 모든 국민에게 효력을 미칠 만큼 막중합니다. 결정은 결론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인 이유 역시, 결정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정당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정당성을 바탕으로 재판다운 재판을 할 때, 우리 재판소의 결정은 비로소, 민주주의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의 결론과 더불어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기초로, 신뢰를 더욱 높이는 30년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여기에 재판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더 폭넓은 조사, 한층 깊이 있는 사색과 연구, 더욱 치밀한 논증, 보수와 진보의 분류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감각을 통해 결정의 설득력을 높이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그리고 내 · 외 귀빈 여러분,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 호주제, 위안부 피해자, 정당해산, 대통령 탄핵, 간통죄, 양심적 병역거부 등 우리 사회의 논쟁적인 사안들을, 헌법재판을 통해 해결하였습니다. 이러한 헌법적 해결은, 대립하는 가치들을 비교하여 보다 중요한 법익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 저울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정의를 추구하는지가, 재판소 결정의 실질을 좌우합니다.

그럼 실질적 민주화를 이룩한 오늘날, 헌법재판소가 추구하여야 할 실질적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통제받지 아니하는 권력이나 탐욕이

인간을 오만하게 할 때

헌법은 인간의 한계를 말해줍니다.

세상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때

헌법은 인간성의 존엄함과 다양성을 깨우쳐줍니다.

이러한 헌법을 판단기준으로 삼는 헌법재판은, 인간의 문제를 파고들어서,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인간에 대한 사랑이 싹틉니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추구하는 정의는, 인간 존엄과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합니다. 재판하는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존엄함도 인정하고, 누구나 동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재판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그 표현이 바로 보편적 인권입니다. 올해로 함께 70주년을 맞는 우리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이 이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재판소는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잠들지 않는 헌법수호의 눈동자가 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헌법환경을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은, 재판소의 주인이신 국민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헌법재판소는 30년 역사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밝은 미래는,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함께 힘을 보태 주신 존경하는 대통령님, 헌법재판소의 미래를 응원해 주시는 내 · 외 귀빈과 재판소 구성원께 감사드리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국민 한 분, 한 분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