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넘긴 뒤 돈 빼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
[형사]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넘긴 뒤 돈 빼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
  • 기사출고 2018.07.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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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보이스피싱 범인에 대해선 횡령죄 불성립"

보이스피싱 조직에 이른바 대포통장을 빌려준 사람이 통장에 입금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몰래 인출했다.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으나,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고영한)는 7월 19일 횡령과 사기방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진 모(26), 최 모(26)씨에 대한 상고심(2017도17494)에서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횡령 혐의도 유지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진씨는 2017년 2월 초순경 자신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카카오톡' 어플을 통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체크카드를 보내주면 1개월에 3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후 2017년 2월 6일 오후 3시쯤 김해시 삼방동에 있는 공원 앞 도로상에서 진씨 명의의 새마을금고 통장, 이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 1개, OTP카드 1개를 퀵서비스 기사를 통해 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겼다.

그러나 새마을금고 통장 등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겼음에도 약속된 300만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진씨는 친구인 최씨에게 "나에게 체크카드 2개를 만들어 주고 문자알림서비스를 신청해 두어라, 체크카드 1개를 불법 스포츠토토 환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고 나머지 체크카드 1개를 가지고 있다가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면 우리가 그 돈을 먼저 인출하여 사용하자, 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면 나한테 전화를 달라"고 제안하였고, 이를 승낙한 최씨는 2017년 2월 초순경 김해시 부원동에 있는 SC제일은행에서 자신의 명의로 개설되어 있던 SC제일은행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 1개를 추가로 발급받고 문자알림서비스를 신청하였다. 진씨 등은 이어 2017년 2월 12일 오후 1시쯤 부산 강서구에 있는 은행 앞 도로상에서 최씨 명의의 SC제일은행 통장, 이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 1개, OTP카드 1개를 택배기사를 통해 먼저 새마을금고 통장 등을 제공했던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주었다. 이후 계좌에 돈이 입금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최씨가 이틀 후인 2017년 2월 14일 오전 11시 20분쯤 보이스피싱 피해자 장 모씨로부터 '613만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진씨에게 전화하여 "돈이 입금되었다"고 알려주었고, 진씨가 오전 11시 50분쯤 부산 강서구에 있는 부산은행 지점 현금인출기에서 미리 소지하고 있던 최씨의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3회에 걸쳐 SC제일은행 통장에 입금된 돈 중 300만원을 마음대로 인출하였다. 진씨와 최씨는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은 진씨 등의 횡령 혐의와 사기방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다만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보아 진씨에게 징역 6개월, 최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횡렴 혐의에 대해, "최씨 명의의 SC제일은행 계좌에 입금된 돈에 대하여 피고인들과 보이스피싱 조직원, 피고인들과 보이스피싱 범행 피해자 장씨 사이에 횡령죄의 위탁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기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이 접근매체가 사기 범죄에 사용될 것임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장씨 등의 행위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계좌명의인이 송금 · 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 · 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계좌명의인이 그와 같이 송금 · 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법리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 · 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 · 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 · 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피고인들에게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사기피해금 중 300만원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사기범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돈을 송금 · 이체하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해당하고, 사기범이 그 계좌를 이용하는 것도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의 실행행위에 해당하므로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그 범행으로 송금 · 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되어 옳지 않다"며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김소영,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대법관은 "사기피해자가 사기이용계좌에 피해금을 송금 · 이체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는 기수에 이르므로 더 이상 그 돈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 계좌명의인과 사기피해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발생한다거나 사기피해자가 소유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계좌명의인은 대포통장 양수인과의 약정상 계좌에 들어온 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임의로 인출하지 않아야 한다"며 대포통장을 넘겨받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조희대 대법관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나 조직원에 대한 횡령죄가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