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네번 졌어도 녹음방초의 계절은 돌아와"
"꽃은 네번 졌어도 녹음방초의 계절은 돌아와"
  • 기사출고 2006.06.0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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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前장관 '뇌물수수' 왜 무죄인가?]법원, 이해관계 정반대 증인 진술 배척 150억 행방은 미궁 속으로…'배달사고ㆍ거짓증언'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핵심 혐의였던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박 전 장관은 2003년 6월 18일 구속돼 7월 첫 공판을 받은 이후 1심 10회, 항소심 10회, 대법원 1회, 파기환송심 15회 등 총 36회에 걸쳐 법정에 섰으며 2004년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1년6개월째 파기환송심 공판이 진행됐다.

박 전 장관은 선고 며칠 전부터 지인들에게 "꽃은 네번 졌어도 녹음방초(綠陰芳草:우거진 나무 그늘과 싱그러운 풀이 돋는 시기)의 계절은 돌아왔다"며 지난 4년간의 심경을 담담하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3년 전 구속 수감될 당시에는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면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며 조지훈의 시 `낙화'를 읊어 화제가 됐다.

법원이 장기간의 수사를 통해 검찰이 기소한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결국 무죄를 선고한 것은 한마디로 이 혐의의 핵심 증인인 김영완씨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을 각각 증거로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 조사 결과 2000년 4월 초 9개 금융기관의 현대건설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된 뒤 농협에서 CD(양도성 예금증서)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 150억원의 행방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장관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주장해온 김영완씨의 진술은 박씨와 이해관계가 정반대 위치에 있는 증인이라는 점이 감안돼 법원에서 배척됐다.

김씨는 자신이 박 전 장관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직접 현대측에150억원을 건네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해외 잠적 중인 상태에도 불구하고 영사신문 진술서까지 만들어 제출했지만 법원은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김씨는 박씨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자신이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이해관계가 정반대 위치에 있는 `잠재적 피의자'라는 점이 배척 이유였다.

돈을 전달했다는 이익치씨의 진술도 비슷한 이유로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씨의 진술은 상황에 따라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결국 이 사건은 150억원을 보낸 사실은 확인됐고 자금세탁이 된 것도 일부 확인됐지만 돈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는 애매한 상태가 돼 버렸다.

150억원의 전달 경위에 대해서는 현대측이 조성한 CD가 박 전 장관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전달됐을 가능성, 김씨가 알 수 없는 경로로 누군가로부터 CD를 전달받아 자금관리를 하다가 박씨에게 전달했다고 거짓 주장했을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씨가 왜 굳이 박 전 장관으로부터 `150억원 뇌물 요구'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지, 이씨는 왜 CD를 박 전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결국 150억원의 행방에 대한 갖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박씨가 150억원을 받은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고 파기환송심에서도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단을 뒤엎을 만한 새로운 증거는 제시되지 않아 150억원의 행방은 `증명 안 된 가설'만 남긴 채 미궁에 빠지게 됐다.

검찰은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으므로 재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임주영 기자[zoo@yna.co.kr] 2006/05/25 19: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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