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대리기사가 도로에 차 세우고 가버려 300m 음주운전…무죄
[교통] 대리기사가 도로에 차 세우고 가버려 300m 음주운전…무죄
  • 기사출고 2018.05.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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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사고 위험 피하기 위한 긴급피난 해당"

대리운전기사가 도로에 차를 세우고 가버리는 바람에 사고의 위험을 피하고자 약 300m 차를 음주운전했다. 법원은 긴급피난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판결했다.

A(34)씨는 2017년 7월 24일 저녁 울산에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술자리가 끝나자 자정 무렵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자신의 집까지 K5 승용차를 운전하도록 했다. A씨는 지리를 잘 몰라 내비게이션을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운전하는 대리기사에게 "길을 잘 모르느냐", "운전을 몇 년 했느냐"는 등으로 운전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급기야 A씨는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라고 말했고, 대리기사는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가버렸다.

A씨는 대리운전업체에 전화해 다른 대리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차가 정차한 곳은 편도 2차선의 도로로, 이 도로에는 갓길이 없고, 2차로 옆에는 가드레일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제한속도는 시속 70㎞이지만, 시속 80㎞로 지나는 차들도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도 다른 차들이 A씨의 차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렸다. A씨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근처 주유소까지 약 300m를 몰았다. A씨는 2017년 7월 25일 오전 0시 46분쯤 스스로 112로 전화해 대리기사가 운전을 하다가 그냥 가버렸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주유소 안쪽으로 운전해서 들어왔다고 자진 신고했다.

울산지법 송영승 판사는 그러나 5월 10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7고정1158).

송 판사는 먼저 대법원 판결(2005도9396)을 인용, "형법 22조 1항의 긴급피난이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를 말하고, 여기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첫째 피난행위는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고, 둘째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하며, 셋째 피난행위에 의하여보전되는 이익은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해야 하고, 넷째 피난행위는 그 자체가 사회윤리나 법질서 전체의 정신에 비추어 적합한 수단일 것을 요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긴급피난의 법리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대리운전기사가 승용차를 정차하여 둔 도로는 새벽 시간에 장시간 승용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보이는 사정, 피고인이 승용차를 운전하여 간 거리는 약 300m에 불과하여 피고인은 임박할지도 모르는 사고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 피고인은 승용차를 안전한 곳에 정차하여 둔 후 경찰에 112로 자발적으로 신고하면서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진술한 사정,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회적 법익과 그로 인하여 보호되는 법익을 형량하여 볼 때 후자가 보다 우월한 법익에 해당하는 사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비록 피고인이 대리운전기사에게 화를 내면서 차에서 내리라고 말한 사정도 있기는 하나, 피고인의 운전은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송씨의 음주운전은 긴급피난에 해당하여 무죄라는 것이다.

송 판사는 "검사가 의견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피고인이 지인이나 경찰에게 연락하지 아니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긴급피난이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보는 것은, 지인이나 경찰이 새벽시간에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하여 줄 기대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아니함에도 지인이나 경찰에 대한 연락행위를 형사처벌로 강제하는 취지여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게다가 경찰에게 음주운전 차량을 이동시켜야 하는 업무까지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타당하지 아니하다"고 판시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