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험, 학위 가진 법률가 양성이 목적"
"다양한 경험, 학위 가진 법률가 양성이 목적"
  • 기사출고 2005.11.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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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예씨 오클랜드 로스쿨 유학기]학생들 대부분 복수 전공…특성화한 분야로 진출"법학도서관엔 영어로 된 법률자료 거의 다 있어"
2008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로스쿨에 관한 법률안의 입법 절차가 국회에서 진행중인 가운데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로스쿨에 재학중인 조경예씨가 유학기를 보내와 소개합니다. 내년초 오클랜드대 3학년 진입을 앞두고 겨울방학을 이용, 국내의 한 로펌에서 인턴십을 밟고 있는 조씨는 유학기에 이어 뉴질랜드 법조계와 법학교육제도에 대한 글도 기고할 예정입니다.-편집자

리걸타임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조경이
저는 이화여대에서 법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후 동 대학원에서 수학을 하던 중 뉴질랜드에 와서 지금은 오클랜드 로스쿨 2학년을 마치고 3학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오클랜드 로스쿨은 4년제입니다.

이곳에 오니 여러 가지로 비교되는 것도 있고, 어려운 점도 있지만, 새로운 언어와 다른 체계로 되어 있는 법학을 배운다는 설레임에 힘들지만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영국의 법체계와 거의 흡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캐나다도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 나라들 또한 영국의 법체계를 계수하여서 서로 흡사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일찍 독립을 한 미국이나 미국과 환경이 비슷한 호주, 캐나다는 일찍이 연방제를 채택하여서 영국의 그것과는 이제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는 영국과 같이 불문헌법 국가이며, 1986년까지는 최상급법원이 영국의 Privy Council 이었을 정도로 영국법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나라입니다.

제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2005년에도, 배우는 판례의 60%가 영국 판례이니, 뉴질랜드 변호사들이 영국에 가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변호사로서 활약하는 것도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겠죠?

뉴질랜드는 인구가 300만 명에 불과한 조그만 섬나라이지만, 뉴질랜드의 국제적인 위상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와 이미 오래전에 민주주의의 기틀을 확립한 영국의 영향이 한몫 했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오클랜드 로스쿨의 도서관은 제가 공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설입니다.

이곳은 영어로 된 법률 자료들은 거의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양이며, 시설 면에서 여느 우수한 로스쿨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는 뉴질랜드의 자료만 가지고는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이곳은 알다시피 인구가 얼마 없고 비교적 안정되고 조용한 국가입니다.

형법시간에 이곳에서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배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교수님들은 주로 영국의 형법 판례들을 다루시는데, "이 케이스는 뉴질랜드에서는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형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에 눈여겨 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종종 말씀하시곤 합니다.

뉴질랜드의 이러한 환경은 자연적으로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국제적인 감각을 길러 주는 좋은 토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흔히, 뉴질랜드에 똑 같은 케이스가 없으면, 캐나다건, 미국이건, 영국이건 비슷한 법체계를 가진 나라들의 판례들을 뒤져서 자기들이 주장하는데 필요한 논거로 들곤 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다른 나라의 법률 데이터 베이스를 배우는 코스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하기 편하니까요.

◇오클랜드 로스쿨의 도서관 전경(위).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왼쪽에 강의동이, 오른쪽에 교수연구실이 위치해 있다. 사진 아래는 도서관 입구를 확대한 모습이다.
한국에서 법 공부를 할 때, 가끔 나오는 독일어를 빼놓고는 외국의 판례를 거의 접할 수 없었던 저에게는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접한 한국 모 기업과 영국 기업과의 소송 가액이 제가 봤던 어떤 한국 판례의 소송 가액보다 높은 것을 발견하고는, 국제거래법과 영미법의 중요함을 또한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법률 전문가들의 층이 두터워야 무역에서 발생하는 분쟁 해결에 비용과 노력을 덜 들이고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곳에서 졸업하면 Professional Course라고 하여서 이곳의 High Court(고등법원) 옆에 붙어 있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연수원에 들어가게 되고, 12주의 교육을 받으면 Solicitor & Barrister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그 임명식 날에는 전통적으로 가발과 가운을 입고 임명식을 거행하는데, 마치 18세기 영화에 나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변호사가 두 종류로 나뉘어 집니다.

그게 바로 solicitor 와 barrister 입니다.

Solicitor는 주로 법정에 가서 변론을 하는 것(이건 주로 Barrister의 업무이지요)만 빼고 모든 법률에 관한 문제를 의뢰인과 상담을 합니다.

한국에서 법무사, 세무사, 회계사, 공인중개사, 재산 관리인, 중재인, 변리사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법률 관련 일은 이 solicitor가 주로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변호사를 키워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전문 변호사를 키워 내는 것에 주력하여 학생들에게 복수 전공(con joint degree)을 할 것을 제도적으로 권장을 합니다.

이곳 법대 학생들은 다양한 복수 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학, 경제학, 과학, 엔지니어링, 정치학, 심지어는 의학까지도 복수 전공을 하여, 졸업후에는 자신이 특성화한 필드로 나가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호주의 법학대학원 도입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학위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전문인을 길러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저는 한국에서 법학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 했는데, 학부 시절에는 그다지 시너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우려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케이스를 읽을 때 영문학과에서 배운 소설과 희곡들을 배우는 듯한 착각을 여러 번 일으켰습니다.

물론 어학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받았고요. 권선 징악, 해피엔딩, 이런 것들이 소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판사님들의 말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는 걸 느낄 때마다 역시 법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 인간에 대한 고뇌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욱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쌓았던 legal mind가 이곳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변호사처럼 생각(think like a lawyer!)하는 훈련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영어권 국가에서 산 적도 없고, 이곳에 온지 4개월 만에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 처음에는 어려운 법률 문장을 접할 때마다 과연 내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원초적인 의문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끝도 없이 읽어야 하는 판례를 꾸준히 접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편안해 졌습니다.

한국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나, 이곳에서 법학을 배우나, 어차피 체계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 선배, 후배님들 다들 건강하시고 하는 일마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조경예(kcho130@ec.auckland.ac.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