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구성 전망
미 연방대법원 구성 전망
  • 기사출고 2005.09.15 22: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복근 외무관]
미국 정가가 로버츠(John G. Roberts) 연방대법원장 지명자에 대한 인준논의로 뜨거워지고 있다. 로버츠 지명자에 대한 인준동의안이 상원을 통과한 후 부시대통령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자를 새로 지명하게 되면 미국 정계는 대법관 인준문제로 더 달구어질 전망이다. 전 미국사회가 연방대법원장 뿐만 아니라 대법관 1명에 대한 인준문제로 이렇게 들끓는 것은 연방대법원 대법관 한 명 한 명이 미국사회에 미치는 정치 · 사회적 영향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유복근 외무관
일찍이 미국 건국의 기초를 마련한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법을 해석 · 적용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국가권력 중에서 '가장 덜 위험한 부처(the least dangerous branch)'라고 이해했지만, 오늘날 미국의 사법부는 입법, 행정, 사법 3부 중 가장 강력한 부(府)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갖는 대법관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웰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은 종종 대통령에게는 거대 야당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힘든 상대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진보적인 사회 · 경제정책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이 뉴딜정책법안에 대해 사적 자치와 계약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잇따라 위헌판결을 내리자 정권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은 재임 중 자신과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하는 인사를 대법관에 임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대법관 후보 인선은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어려운 선택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지병을 앓아 왔던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 연방대법원장이 최근 타계함에 따라 지난 7월 사임의사를 밝힌 오코너(Sandra Day O'connor)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되었던 로버츠(John G. Roberts) 판사를 렌퀴스트의 후임 연방대법원장으로 지명하였다. 게다가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 자리도 비어 있는 상황이다. 태풍 카트리나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시대통령이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의 사망으로 아버지 부시에 이어 또 다시 2명의 연방대법원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정치적 행운을 갖게 된 셈이다.

지난 5일 타계한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은 그간 정치, 종교 및 개인의 자유에 관해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사건들에서 공화주의적인 가치를 수호한 보수적인 대법원장으로 유명했다. 그는 성조기 소각행위를 수정헌법 제1조에서 정한 표현의 자유의 보호 범위로 인정한 'Texas v. Johnson'사건에서 격렬한 반대 의견을 밝혔으며, 미국의 역사적 차별에 배경을 둔 소수계에 대한 대학입시 우대정책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또한 프라이버시의 하나로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Roe v. Wade'판례를 뒤집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였다. 그는 미합중국을 구성하는 정치적 구성원리인 연방주의(Federalism)와 관련하여 연방정부의 권한강화에 반대하고 주의 주권(主權)을 열렬히 옹호하였다. 이번에 렌퀴스트의 후임으로 지명된 로버츠 판사도 앞으로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의 가치관과 법철학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국 법조계의 최고 관심사는 누가 오코너의 후임대법관으로 지명되느냐이다. 현재 공화당 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인물들은 부시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텍사스 주를 관할하는 연방법원 제5항소법원의 존즈(Edith Jones) 판사, 클레멘트(Edith Clement) 판사 및 오웬(Priscilla R. Owen) 판사, 제4항소법원의 러틱(J. Michael Luttig) 판사 및 윌킨슨(J. Harvie Wilkinson Ⅲ) 판사 등이다. 이중 관심사는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자로 또 다시 여성 대법관이 지명될 수 있을지 여부이다. 오코너 대법관이 퇴임하게 되면 연방대법원에는 여성 대법관이 긴스버그(R.B. Ginsburg) 한 명만

남게되는데, 부시대통령이 존즈 판사나 클레멘트 판사를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할지 여부가 법조계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역시 최고의 관심사는 현재 법무부장관인 곤잘레스(Alberto Gonzales)가 오코너를 대신하는 대법관으로 지명될 수 있을지 여부이다. 곤잘레스는 소수계인 히스패닉 태생으로, 부시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오랜 정치적 동지이다. 그는 부시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 텍사스 주 대법원장을 역임했으며,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백악관 법률고문을 역임하였다. 그는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재직하는 동안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테러리스트는 연방헌법 제5수정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절차(due process)에 의해 기소하기 보다는 전시에 적교전자(enemy combatant)를 기소하여 처벌할 수 있는 군사법정(military commission)에서 비밀리에 재판해야 한다는 행정부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붙잡혀 억류된 탈레반(Taliban) 일원에 대해 전시인도법인 제네바협약상 포로 대우를 거부해야 한다는 행정부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시대통령은 그간 곤잘레스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히스패닉계로 드물게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여 연방정부의 고위직에 오른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그를 대법관으로 지명시 정치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는 부시대통령과 오랜 기간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해 온 인연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코커스내의 일부에서는 그가 대법관으로 지명되면 정치적 신념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게다가 공화당 인사들이 가장 염려하는 낙태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인사들은 여성의 낙태를 허용한 'Roe v. Wade'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여 왔다.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동의를 거쳐 임명된다. 대법관 후보 물색은 법무부, 전미변호사협회(ABA), 집권당의 코커스 모임 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렇게 물색된 후보들이 대통령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정치적 리트머스 테스트를 거쳐 연방대법원장이나 대법관으로 공식 지명된다.

앞으로 누가 이런 테스트를 거쳐 후임 대법관으로 지명될지 알 수 없지만, 부시대통령의 선택은 1930년대 뉴딜 당시 진보주의적인 민주당 인사들이 장기간 연방대법원을 이끌어간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이 연방대법원을 완전히 장악하는 단초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지명자의 임명까지는 상원의 인준동의가 남아 있으나, 그에 대한 인준안 통과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가 이끄는 연방대법원이 9.11 테러 이후 위축되고 있는 적벌절차를 더욱 보장하고, 미국의 최고법으로서 조약(국제법)의 정신을 확인하여 법과 정의의 원칙이 미국의 외교정책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유복근 외무관은 한국외대 정외과를 나와 제29회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했다. 고려대 법과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했으며(법학석사, 박사 수료),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LL.M.(세법 전공)을 땄다. 이어 하버드 로스쿨 국제조세과정(ITP)과 하버드대 J.F.케네디 행정대학원을 졸업(MPA)했다.

세계적인 조세전문 저널인 'Tax Notes International'의 한국 관련 기고자이며, 외교통상부 공보관실, 통상교섭본부 경제협력과, 조약국 조약과 등을 거쳐 현재 조약국 국제법규과에 근무하고 있다.


pkyuh95@mofa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