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 퇴임하는 '교육CEO' 안경환 서울법대 학장]
[내달 3일 퇴임하는 '교육CEO' 안경환 서울법대 학장]
  • 기사출고 2004.05.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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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사법개혁 직접 챙겨야"
" 우리 대학 졸업생중에서 (사회의) 지도자가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법대 출신들은 세상에 대한 종합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해서 톱(top)의 자리까지 간 사람은 적지 않은데 종합력이 없어요. 그래서 대통령도 아직 안 나오는 것 아닌가요."

안경환 학장
법학 교육에 관한 서울대 법대 안경환 학장의 문제 제기는 항상 핵심을 찌르는 무엇이 있다. 임기 2년의 학장 퇴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법학 교육에 관한 그의 평소 지론이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와 종합력’이란 두 키워드를 가지고, 우리 법학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미국의 로스쿨 제도가 성공한 이유는 실무의 본질이 서비스인 법학을 종합적인 지적체계로서 잘 가르쳐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로스쿨이) 실무를 가르치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의 로스쿨은 엄청난 지적 훈련을 시키는 곳입니다.”

안 학장은 이를 위해 “ 무엇보다도 충분한 물적 투자와 학사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전제한 후 “우리의 법학 교육도 종국에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오로지 법학교육 경쟁력 강화 위해 추진돼야"

그는 그러나 “행여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의 해소나 법대에서 좋은 학생들을 다 가져가기 때문에 법대를 학사과정이 아닌 대학원 과정의 로스쿨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하면 실패하게 된다”며 “오로지 법학 교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학장으로 있으면서 성취한 여러 업적들도 '이성적 종합력'을 키우는 법학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뿌리가 닿아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교육 CEO’로 불릴만큼 학장 시절 서울 법대의 인적 물적 투자와 국제화에 앞장선 학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천하제일 서울법대’라고도 불리는 서울법대의 현실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가장 먼저 힘쓴 분야는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인적 구성의 다양화’로 요약할 수 있다.

역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는 법대의 학사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신체 건강하고 똑똑하고 한국어만 쓰는 똑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힘이 안 생기지요, 종합력이 길러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학장으로 취임하기 전 32명이던 법대 교수는 지금 41명으로 늘었다.

원래 비어있던 두 자리를 빼고, 7명의 교수가 그의 노력으로 법대에 새로 자리를 확보했다.

수만 는 게 아니었다. 교수층도 한층 두터워지고 다양해졌다.

금녀의 집 비슷했던 법대 교수실에 지금은 4명의 여교수가 활약중이며, 외국인 교수 3명이 각각 미국법, 독일법, 중국법을 가르친다. 2003년부터 '과학기술과 법’을 가르치는 구대환 교수는 공학도 출신이다.

또 서울법대엔 미 버클리대와 공동 운영하는 ‘기술과 법 센터’, ‘금융법 센터’,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지원하는 ‘MS 법의 지배 센터’ , ‘공익인권법센터’ 등이 안 학장 재임 전후로 생겨 학생들의 연구열을 북돋우고 있다.

법학발전재단 만들어 1000명 모금

이와함께 안 학장은 2003년 1월 15일 ‘서울대학교 법학발전재단’을 설립 ,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여러 인적 물적 투자를 위해 정부 예산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학들처럼 졸업생등이 중심이 된 사적 기금을 조성하자는 발상이었는데, 지금까지 재단에 기부한 사람이 1천명이 넘을 만큼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헌법학을 전공하고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안 학장은 학교 밖에서도 활동이 가볍지 않다.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무 검찰 분야의 제도 개혁에 앞장서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위연합회(APF)의 자문법률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또 사법개혁위원회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논의가 한창인 주요 사법개혁 과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판사는 다른 법률가들과는 업무가 다르다고 보아야 합니다. 변호사 등은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고, 판사는 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이지요. 마땅히 판사가 경험이나 식견이 높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일찍 판사를 시작해 빨리 그만두고 나가서는 변호사하는 식인데, 변호사등의 경력이 많은 사람 중에서 판사를 임명해 법원에 오래 있게 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과 관련해서도 그는 현재의 제도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최고법원은 정책법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책법원에 꼭 실무에 밝은 사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적어도 헌법재판소 만큼은 (그 구성이) 이런 방향으로 돼야 한다고 봅니다. 최고법원의 구성을 순 실무자에 한정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어 “현재의 재판제도엔 법관이 신에 가깝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법관의 판단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어떤 식으로 보충, 보완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라며 배심제, 참심제의 도입 논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민주성 못지않게 전문성 확보 고려돼야"

그러나 현재의 사법개혁 논의 과정 전반에 대해서는 불만이 적지 않은 듯 했다.

“지금 논의는 찬, 반 의견만 있지 한걸음도 진전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 논의는 한, 두가지만 걸려 있는게 아니라 여러 주제가 망라된 일종의 내셔널 아젠다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챙겨야 합니다.”

그는 특히 “ 의견들이 너무 민주성 확보에만 치중된 측면이 없지 않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실력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민주성 못지않게 전문성의 확보가 중요하다”며 전문성 확보에 대한 고찰이 결여된 로스쿨제 도입 논의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법과대학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법대 출신들은 그러나 종래와는 다른 형태로 국가와 사회 그리고 세계에 기여해야 합니다.”

6월3일 학장 이취임식을 끝으로 올 가을학기엔 서울대를 떠나 미 산타클라라 대 로스쿨에서 ‘비교헌법론’ ‘아시아 인권법’을 강의할 예정인 안 학장은 “지성인으로서, 사회 의식있는 사람으로서 활동하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