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주문가격 '0.8원'을 '80원'으로 잘못 입력해 선물스프레드 계약 체결…동양증권, 돌려주라"
[증권] 주문가격 '0.8원'을 '80원'으로 잘못 입력해 선물스프레드 계약 체결…동양증권, 돌려주라"
  • 기사출고 2012.08.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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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주문자의 착오 이용…취소 가능"
증권사 직원이 파생상품 매수주문을 내면서 주문가격에 소수점을 잘못 찍는 황당한 실수로 15초만에 수십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런 경우 계약을 돌이킬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최승록 부장판사)는 7월 23일 미래에셋증권과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동양증권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2011가합112747)에서 "동양증권은 원고 미래에셋증권에 23억 7500여만원, 현대해상화재보험에 50억원을 각각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2010년 2월 8일 캐나다왕립은행으로부터 '2010년 2월-3월 미국 달러 선물스프레드'에 관한 매수주문 위탁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 날인 9일 개장 즉시 담당 직원이 회원파생상품단말기로 위탁받은 매수주문을 입력하면서 주문가격 '0.80원'을 '80원'으로 잘못 입력해 1만 5000계약의 매수주문을 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무려 100배나 비싼 가격에 개장 15초만에 매도주문이 쏟아졌고 순식간에 1만 5000계약이 체결됐다. 미래에셋증권은 가격에 관한 착오거래를 이유로 한국거래소에 착오거래정정신청을 해 자기거래로 인수하고, 금융회사 두 곳과는 착오로 체결된 매매계약을 무효처리 하기로 했으나, 당시 33회에 걸쳐 주문가격 1.1원에 선물스프레드 매도주문을 내어 9324계약을 체결한 동양증권은 이를 거부했다. 미래에셋증권과 이 사고로 인한 보험금 50억원을 미래에셋증권에 지급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동양증권을 상대로 계약 취소를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쟁점은 미래에셋증권이 민법 109조를 근거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거래와 같은 선물스프레드 거래에 관하여 민법 109조의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매수주문은 미래에셋증권의 착오로 인한 것으로서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래에셋증권이 지휘 · 감독 및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매수주문의 가격을 잘못 입력한 것은 거래상 필요한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 민법 109조에 따르면, 의사표시가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으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어 이 대목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4288민상321)을 인용, "의사표시의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민법 109조의 단서는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당초에 그 상대방이 악의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위 규정에 의하여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석함이 위 109조 전체의 정신에 부합한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선물스프레드의 가격은 이 사건 거래를 전후하여 거의 변동이 없었고 거래 전날의 종가는 0.90원이었던 점 ▲피고의 직원인 A씨는 미래에셋증권이 매수주문을 낸 후 최초 거래가 체결된 사실을 확인하고 피고에게 유리한 거래임을 직감하고 약 15초 안에 33회에 걸쳐 매도주문을 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로서는 적어도 이 사건 거래 중 최초의 매매계약이 80원에 체결된 후에는 이 사건 매수주문의 주문가격이 '80원'인 것을 확인함으로써 매수주문이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 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선물스프레드의 시가와의 차액을 얻기 위해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에 걸쳐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가 성립된 것"이라고 판시, "미래에셋증권은 이 사건 매수주문을 함에 있어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에 대하여 착오를 이유로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매수주문 취소로 동양증권이 반환해야 할 매매대금은 80원Ⅹ9324계약Ⅹ1만 달러인 74억5900여만원. 재판부는 여기서 미래에셋증권이 매수주문을 낸 같은 날 제3자에 0.9원씩에 매도하고 받은 8300여만원(0.9원Ⅹ9324계약Ⅹ1만 달러)과 현대해상으로부터 받은 보험금 50억원을 공제한 23억 7500여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또 현대해상엔 보험금 5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이 미래에셋증권과 현대해상을 대리했으며, 법무법인 세종이 동양증권을 대리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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