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를 거절할 때 실거주 의사를 증명할 책임은 집주인에게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단순히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표명한 것만으로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으로, 대법원은 실제로 이사하기 위한 준비가 있었는지나 실거주하려는 경위 등을 종합해 실거주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2월 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 주인 A(여)씨가 "아파트를 인도하라"며 임차인인 B씨 부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다279795)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1월 B씨 부부에게 이 아파트를 보증금 6억 3,000만원에 같은 해 3월 8일부터 2021년 3월 8일까지 임대하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A씨의 남편은 임대차계약 만료일을 약 3개월 앞둔 2020년 12월 17일경 B씨 부부에게 "코로나로 사업이 어려워져 금전적으로 매우 어렵고 자녀들을 제주 국제학교에 보낼 수도 없게 되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서초구의 또 다른 아파트를 급매로 팔고 가족 모두가 이 아파트로 들어와서 살려고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B씨 부부는 일단 수긍하는 답변을 했다가 내용증명우편을 통해 "계약갱신을 청구한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A씨 역시 2020년 1월 4일경 내용증명우편을 통해 피고들에게 "임대차계약이 만료하면 본인이 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할 계획이므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단서에 따라 피고들의 갱신청구를 거절한다"고 통보했다.
A씨는 이 아파트와 제주 서귀포시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A씨의 남편은 서초구에 또 다른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A씨는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위 제주도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고, A씨의 남편은 서울에서 소득활동을 하기 위해 서초구의 또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B씨 부부는 임대한 아파트의 유지 · 보수와 관련된 사항은 제주도에 있는 A씨 대신 서울에 있는 A씨의 남편에게 연락하여 해결하기도 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갱신거절은 적법하다며 "피고들은 원고로부터 630,000,000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아파트를 인도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 · 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고 전제하고,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의 존재는 임대인이 단순히 그러한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사정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인정될 수는 없지만, 임대인의 내심에 있는 장래에 대한 계획이라는 위 거절사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임대인의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 진정하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이 인정된다면 그러한 의사의 존재를 추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임대인의 주거 상황, 임대인이나 그의 가족의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임대차계약 갱신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임대인의 실제 거주 의사와 배치 · 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이러한 언동으로 계약갱신에 대하여 형성된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여부, 임대인이 기존 주거지에서 목적 주택으로 이사하기 위한 준비의 유무 및 내용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고 측은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 전에는 원고와 그 배우자, 자녀가 이 사건 아파트에 거주할 예정이라고 말하다가 소장에서는 원고 본인 또는 원고 부모가 이 아파트에 거주할 예정이라고 주장하였고, 2021. 9. 8.자 준비서면에서는 원고 배우자가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지방에 거주하던 원고 부모가 이 아파트 인근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기로 계획하였으나 피고들이 계약갱신을 요구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원고 부모가 이 아파트에 거주하기로 하였다고 주장하였다"고 지적하고, "이렇듯 원고는 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사유에 대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바뀌게 된 데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원고가 임대차계약의 갱신거절을 할 무렵에 원고는 자녀 교육을 위하여 다른 지역에 있는 주택에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원고 배우자는 직업상 이유로 이 아파트 인근의 다른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원고와 원고 가족에게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하고 이 아파트에 거주하여야 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와 자녀들이 다른 지역 생활을 청산하거나 이를 위하여 전학 또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정도 없고, 이 아파트 인근의 다른 아파트를 급매로 처분하겠다던 원고 배우자는 이를 처분하지 않은 채 여전히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고가 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한다는 이유로 피고들의 갱신요구를 거절하려면 그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하므로 실제 거주한다는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 진정하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정을 주장 · 증명할 필요가 있으나, 위와 같은 사정을 보면 원고가 드는 사정만으로는 원고나 원고 부모가 이 사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인정하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뿐만 아니라 원고나 원고 부모가 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에 관한 다른 사정이 있는지 등 앞서 본 사정을 종합하여 심리함으로써 원고나 원고 부모의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였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심리하지 아니한 채 원고의 실제 거주 의사에 개연성이 있고 그러한 의사와 명백하게 모순되는 행위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갱신거절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단서 제8호의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