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진폐증 산재급여는 원인제공 근무지 중 마지막 퇴직일 기준"
[노동] "진폐증 산재급여는 원인제공 근무지 중 마지막 퇴직일 기준"
  • 기사출고 2023.06.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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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진단 시점 가까운 사업장 아니야"

여러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진폐 진단을 받은 경우 산재보험급여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을 어느 직장을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

A씨는 1979년 9월 28일부터 1984년 3월 31일까지 약 4년 6개월간 B광업소에서 채탄보조공으로 일했다. 이후 약 8년 6개월이 지난 1992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한 회사의 터널 신설공사 현장에서 암반에 구멍을 뚫는 착암공으로 근무하다가 사고로 퇴직했다. 그는 2006년 12월 진폐증 진단을 받고, 진폐정밀진단 결과 '진폐병형 제1형, 심폐기능 정상'으로 판정받아 장해등급 13급 결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B광업소를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 A씨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했다.

1973년 6월 1일부터 1989년 11월 1일까지 약 16년 5개월 동안 C탄광에서 굴진공으로 일한 D씨는, 약 2년 9개월이 지난 1992년 8월 4일부터 19일까지 16일간 A씨와는 다른 회사의 터널 신설공사 현장에서 착암공으로 일하다가 사고로 일을 그만뒀다. 1997년 9월 진폐증 진단을 받은 D씨는 진폐정밀진단 결과 '진폐병형 제2형, 심폐기능 중등도장해'로 판정받고, 장해등급 3급 결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D씨에게 C탄광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 보험급여를 지급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일을 하다가 진폐증에 걸린 근로자는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급여 액수는 그가 직장에서 받은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정한다.

A, D씨는 마지막 직장을 기준으로 보험급여를 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각각 평균임금 정정과 보험급여 차액 지급을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이 A, D씨가 일한 마지막​​​​ 직장은 근무기간이 짧아 두 사람의 진폐증 발병에 주된 원인이 된 사업장으로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하자 두 사람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여러 사업장을 전전하다가 마지막 사업장을 퇴직한 후 직업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의 평균임금을 산정함에 있어 근로기준법상 평균임금 산정시 고려되는 퇴직일의 기준이 되는 사업장은 직업병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 즉 업무와 직업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 중 마지막 사업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분진으로 인하여 진폐증을 발생시키거나 기존의 진폐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진폐증 확진을 받은 경우, 확진 받은 때부터 가장 근접한 사업소에서 받은 임금이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많지 아니하고 생활임금을 사실대로 산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평균임금이라면 이를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그러나 6월 1일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직업병 진단 확정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며 다시 판단을 뒤집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8두60380).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진폐와 같이 유해 요소에 장기간 노출되어 발병하고 잠복기가 있는 직업병의 경우 질병에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에서 퇴직한 후 비로소 질병을 진단 받는 근로자가 적지 않고, 그중 일부는 그 사이에 직업병과 관련이 없는 사업장에서 근무하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은 대체로 근로자가 장기간 근무하였던 곳이므로 그 임금수준이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적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도록 한다면,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그 직업병 진단 직전에 근무한 사업장이 어디인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사업장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은 업무상 재해와 평균임금 산정 기준이 된 사업장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을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위와 같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내용과 연혁 등에 비추어 보면, 진폐 등 직업병에 대한 적절하고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을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착암업무가 일반적으로 진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업무라는 사정만으로 위 각 사업장을 진폐의 원인 사업장으로 볼 것이 아니라, 원고들이 위 각 사업장에서 수행해 온 업무의 내용과 근무기간, 유해 요소에 노출된 정도, 진폐 진단일까지의 시간적 간격 및 진단된 진폐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위 착암업무가 원고들의 진폐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