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아시아 중재의 메카로"
"서울을 아시아 중재의 메카로"
  • 기사출고 2008.02.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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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 ICA, LCIA 상임위원 김갑유 변호사 긴급제언 "국제 중재 유치엔 샌드위치 국가가 오히려 장점"
"경제계에선 우리가 샌드위치 신세라며 걱정들을 많이 하던데, 국제중재 재판을 유치하는데는 샌드위치 국가가 오히려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갑유 변호사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ICA)과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상임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서울을 아시아지역의 중재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여러 법률가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한국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지정학적인 이유나, 국제경제적인 측면에서 수긍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지정학적, 실물경제 측면서도 서울 적격

그의 인식은 먼저 우리 기업들이 ICC 등 국제 중재기관의 주요 고객이라는 시장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고, 수많은 한국 기업이 국제거래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분쟁이 생겨 이를 해결하려면 서울이 아닌 싱가폴이나 홍콩의 중재법정에 서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조선, 해운, 건설, IT 등 중재의 대상이 되는 실물경제는 서울이 싱가폴이나 홍콩보다 월등히 유리한 배후조건을 갖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즐비한 게 한국경제의 국제적인 위상이다. 서울이 싱가폴, 홍콩보다 중재중심지가 될 수 있는 배경이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 아닌 싱가폴, 홍콩이 아시아 법률시장의 허브(hub)로 기능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엄청난 돈을 뿌리고 있으며, 변호사 등 한국법조계의 발전에 크나큰 손실로 작용하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 기업이 관련된 사건도 적지 않지만, 중국기업과 미국기업, 중국기업과 일본기업, 일본기업과 미국기업간의 분쟁 등 3국간 기업거래에서 생긴 중재사건이 훨씬 많다"며, "이런 사건도 서울로 유치해 중재를 진행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서울서 중재하면 한국 법률가 일 많아져

김 변호사는 서울의 지정학적 이점과 상당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의 법률인프라를 소개하며 서울이 왜 아시아 최적의 중재중심지가 돼야 하는지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중재 등 법률서비스는 무엇인가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마땅히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재판의 장소가 되는 나라가 강대국이면 당사자가 부담을 느낄 수 있지요."

김 변호사는 그러나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고, 오히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며, "서울은 중립적이고 편견이 없는 지역이라는 재판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지역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도 따지고 보면, 이런 지정학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게 김 변호사의 의견. 그는 "정서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우리 배우가 출연한 영화나 TV드라마를 보겠느냐"고 반문하며, "한류가 성공한 것은 그만큼 한국에 대한 반감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일본, 대만과 마찬가지로 같은 대륙법계 국가이면서도 영미법적 요소가 많이 발달한 점도 김 변호사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그는 "한국의 수많은 변호사들이 미국과 영국의 로스쿨에 유학해 영미법을 공부하고, LL.M.(법학석사)을 따 돌아온다"며, "세계의 양대 법체계라고 할 수 있는 대륙법과 영미법적 소양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법률가는 한국법률가가 최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 변호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LL.M.을 했으며, 뉴욕주 변호사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는 또 "변호사들만 그런 게 아니라 판, 검사와 교수들도 미국과 영국의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다"며, "한국이야말로 영미법적 고려나 국제기준의 적용 등에 있어서 손색없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 법원은 국제조약과 국제기준 등의 적용에 있어서 매우 선진적이라는 국내외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 수천명 규모의 한국계 미국변호사가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등 서울이 아시아 법률시장의 메카가 되기 위한 인적 기반은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김 변호사는 자신만만해 했다.

물론 서울이 아시아의 중재중심지로 발전하기 위해선 보완해야 할 구비사항도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우선 아직 영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이른바 길거리 영어가 문제라는 것이다. 또 영어로 중재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갖춘 중재인과 중재과정에서 당사자의 사정을 영어 등으로 설득력 있게 재판부에 전달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가의 확보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국제중재 재판이 열릴 경우 영어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는 매우 적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재전문가, 첨단 중재법정 등 확보해야

최첨단 시설을 갖춘 전용 중재법정 등 물적 인프라와 영어 속기사 · 통역 등의 확보도 과제로 지적된다. 김 변호사는 "서울에서 중재가 진행될 경우 현재로선 호텔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대한상사중재원 등이 나서 최첨단의 중재법정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재사건을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싱가폴의 경우 원거리에 있는 증인을 비디오로 신문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첨단법정 이른바, 'Technical Court'도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법정엔 판사와 대리인 옆에 증인신문을 할 수 있는 각각 3대씩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이와 함께 김 변호사는 "제품만 만들어 팔 게 아니라 세계기술을 리드하는 한국표준(Korean Standard)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적용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선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일선 기업들에게 주문했다. 이런 기준을 우리가 만들어 적용하면 시장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분쟁해결 장소 등도 한국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져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도 우리 기업들이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 아시아 중재의 중심이 될 때의 이익은 엄청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중재시장 자체는 물론 관련 소송이 늘어나게 돼 소송변호사도 바빠지게 되지요. 또 집행재산을 서울에 갖다 놓을 가능성이 높아져 여러 파생적인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재전문가로 아시아지역에서도 이름이 높은 그는 서울이 아시아 중재의 메카가 돼야 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ㅣ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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