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한겨울 용접 작업하다가 입사 3일 만에 뇌출혈 사망…산재"
[노동] "한겨울 용접 작업하다가 입사 3일 만에 뇌출혈 사망…산재"
  • 기사출고 2021.11.0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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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법] "추운 날씨에 실책 스트레스 겹쳐"

근로자가 한겨울에 용접 작업을 하다가 입사 3일 만에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했다. 법원은 노동부고시가 '발병 전 12주 동안'의 업무량 등을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 등과 비교하여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추운 날씨에 노출되고 작업 과정에서 실책을 범해 정신적 스트레스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9월 16일 수개월간 실직 상태에 있다가 2018년 1월 8일 경남 사천에 있는 기계장치 제조업체에 입사해 용접 업무를 하다가 입사 3일 만인 1월 11일 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한 A(사망 당시 57세)씨의 사실혼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20구합68363)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박성훈 변호사가 원고를 대리했다.

A씨는 용접 작업을 하던 중인 2018년 1월 11일 오후 5시 20분쯤 동료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퇴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는 작업장에서 나가다가 돌연 쓰러진 후 병원으로 후송되어 '상세불명의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자택 인근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1월 16일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A씨가 근무했던 2018년 1월경은 한겨울로 기온이 많이 내려간 시기였고, 특히 발병 당일인 1월 11일 사업장이 위치한 경남 사천의 최저 기온은 0도, 최고 기온은 5도로 확인됐다. A씨는 티그(Tungsten Inert Gas) 용접 방식으로 선박의장품을 선박 블록에 설치 · 연결하는 업무를 주요 업무로 담당했다.

재판부는 "사업장에서 A가 수행한 업무와 A의 사망 원인이 된 뇌출혈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용노동부고시)」 Ⅰ. 1. 나목 전문은 '발병 전 12주 동안'의 업무량 등을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 등과 비교하여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고,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근로자의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업무상 과로를 인정할 여지가 없게 되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4조 제3항 [별표3]은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에 그치므로, 위 규정의 위임에 따라 세부 기준을 정한 이 고시도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는 예시규정으로 보아야 하는 점(대법원 2020두39297 판결 참조), 피고가 이 고시의 구체적인 적용을 위하여 마련한 내부 지침인 「뇌혈관질병 · 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근로복지공단 지침)」에서도 '만약 해당 업무 종사기간이 짧아 12주를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산정 가능한 기간을 기준으로 발생 전 1주와 발생 전 2주부터 산정 가능 기간까지를 비교하여 평가'라고 규정함으로써,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A의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4일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A의 업무상 과로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고시는 뇌혈관 질병에 유해한 작업환경의 대표적인 예로 '한랭 노출'을 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A는 한겨울인 1월경에 사업장에서 근무하였는바, ①그 무렵 사업장의 소재지인 경남 사천의 기온은 0∼5도로 상당히 낮았던 점, ②사업장은 천장이 개방된 형태였으므로 외부 기온의 영향을 차단하기 어려웠던 점, ③사업장은 바람이 많고 습도가 높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있어서 체감온도는 한층 낮았을 것이라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당시 A가 방한복을 입은 상태로 작업을 하였고 매일 식사시간에 더하여 20분의 휴게시간이 별도로 주어졌더라도, 기본적으로 한랭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위 근로복지공단 지침도 '한겨울 추위에 노출되는 작업으로의 변화'를 '업무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의 예시로 들면서, 근로자가 이러한 변화의 적응에 필요한 기간을 거쳤는지 여부를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는 여름인 2017. 8. 31.부터 줄곧 실직 상태에 있다가 한겨울인 2018. 1. 8. 업무를 재개한 것이므로, 그동안 A가 한겨울 추위의 적응에 필요한 준비기간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면 A는 사업장에서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적응하기 어려운 업무 환경에 갑작스럽게 직면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A는 상병이 발병한 당일 오전에 자신이 전날 수행한 작업에서 불량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통보받았고, 비록 사업장 측에서 A를 적극적으로 질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한편으로 ①A는 수개월간 실직 상태에 있다가 사업장에 취직한 것인 점, ②당시는 작업 물량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고도 정확한 업무 처리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는데, A는 2년 3개월간 용접 업무에 종사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 입사한 지 3일 만에 실책을 범한 것인 점, ③A가 위 작업 불량 사실을 통보받은 시점으로부터 10시간이 채 지나지 아니하여 상병을 일으킨 점 등을 아울러 감안하면, A가 자신의 업무상 실책에 대하여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거나, 그러한 심리적 부담이 상병과는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업장의 한랭한 유해환경에 더하여 용접 작업 자체의 심한 업무 강도와 작업 실수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병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